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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 때문에 늘 고민하며 살아가는 당신에게오경택 /행복전도사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9.06.0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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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때문에 고민하는 게 사람이다.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 보라. 이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아마 다들 고민이 한 짐일 것이다. 다만 고민이 없는 척 하거나 또는 고민을 처리하는 능력의 차이만 다를 뿐이다. 오죽했으면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도 자신을 가리켜 짐(朕)이라고 했겠는가. 물론 이 짐(朕)자는 ‘나’를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이지만, 풀이하면 백성의 짐을 모두 책임지는 존재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한국 사회에 그 많은 교회가 있다는 것은 그 만큼 해결해야 할 고민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누군 형이상학적인 죽음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또 누구는 뚱뚱한 자신을 놓고 고민하고, 또 누구는 연애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등 고민의 성격과 종류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아니, 이 세상에 70억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70억 종류의 고민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고민은 서로 상충하는 듯 닮아 있다. 우리 인간이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상대방 고민을 내 고민으로 새겨듣고 함께 고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고민(苦悶)이라는 한자다. 고민할 민(悶)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문 (門) 안에 감금된 마음(心)이 바로 고민이다.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데 그 나가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하기 위해 점집을 찾기도 한다. 나 역시 가끔씩은 오늘의 운세를 보곤 한다. 그런데 웃긴 것은 오늘의 운세를 당당하게 보지 않고 늘 삐딱하게 흘겨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안 보는 척 하면서 다 보는 식이다. 그리하여 마음에 드는 해석은 받아들이고 찝찝한 해석은 무시해 버린다.

어느 심리학자는 우리 뇌의 작동원리를 알아두는 게 고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발달시켰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원초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상황을 주도해, 합리적인 사고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므로 무력감이나 고민자체에 빠지고 만다는 것.

특히 삶 자체가 너무나 불확실하고, 또 그 불확실 한 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불확실성과 불안을 일종의  세상을 살아가는 대가로 지불하는 ‘기본요금‘이라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나는 고민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이므로 고민 자체를 없애려고(그런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므로)할 것이 아니라 수용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수용하게 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고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습관성 고민이다. 그런 사람은 강박증까지 더해져 항상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게 된다. 심지어, 고민이 없을 땐 또 고민이 없는 것 때문에 고민하고 행복하면 또 행복이 오래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하면서 불안해한다. 어차피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할 바에는 그 고민을 창조적이고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게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고민을 통제하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도움이 된다. 마치 맹수를 길들이면 쉽게 복종하듯이 고민도 어떻게 길들이는 가에 따라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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