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돌아보니 모든 게 감사의 조건들이었지만, 그 순간은 정말 눈물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서울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귀농을 한다하니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웠겠는가. 그러나 내겐 확고한 꿈이 있었다. 귀농할 마을을 살기 좋은 마을, 건강한 마을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십년이라는 장기 계획을 세웠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 긴 시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전체의 시간을 놓고 보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막상 귀농을 결정하고 짐을 싸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과  불안이 교차하면서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렇게 흐느끼는 내게 남편은 “우리 다시 한 번 잘해보자, 그리고 당신은 할 수 있다” 고 위로하는 말이 복음처럼 들렸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농촌으로 내려간다는 나의 말에 지인들은 화들짝 놀라는 모습들이었다.

나처럼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그것도 서울 사람이 다 된 아낙네가 척박한 땅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 가슴 한켠에서는 묘한 용기와 오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래 제 2막 인생, 멋지게 시작해 보는 거다’ 나는 내 자신에게 수시로 이런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면서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번 살다 가는 인생,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 질문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인생의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가지만 80%의 사람들이 그럭저럭의 테두리에서 살다 간다는 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차 올랐다.

며칠을 준비하고 고민한 끝에 원예치유체험농원을 만들기로 결심을 굳혔다. 지친 현대인들이 내 농원에 와서 치유를 받고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다. 아니 내가 서울에서 사업을 접었을 때, 그 상실감은 생각 외로 커 스스로 치유가 필요하다는 경험도 한몫을 했다.

나는 먼저 귀농귀촌학교에 등록을 해 100시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는 동안 나의 목표는 더 뚜렷해지고 또 확고해졌다. 그러던 중, 농축산식품부 공모사업에 응모했으나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물론 기획이 서툰 탓도 있었지만 정확한 방법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후,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돌아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마을을 돌아보는데 빈집이 너무 많이 눈에 띄었고, 그 순간, ‘아 이 빈집을 잘만 활용하면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을 살리기 운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보던 주민들도 내가 사심 없이 마을 일에 앞장을 서자 하나 둘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진심(盡心)을 다 하면 진심(眞心)을 얻게 되는 법, 그러던 중 내게 기회가 왔다. 주거지역취약개선사업(새뜰사업)에 선정되면서 31억이라는 사업비를 받게 되었는데, 이 사업은 내 생에 최고의 날임은 물론,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귀농 초기에는 그저 막막하고 막연해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마음을 다해 한발 한발 나가자 기회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나는 그 31억의 사업비를 마을 발전을 위해 모두 사용했으며, 현재는 국화마을 가꾸기에 전념을 하고 있다. 

아마 조만간에 내가 사는 마을 이름도 벌교국화마을로 명칭이 바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남편의 지원과 격려는 물론,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내 편이 되어 준 덕분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우리 벌교국화마을이 문화적 가치와 교육적 가치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마을이 되기를 희망하며 날마다 국화밭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조급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 행동할 때 주변도 나를 돕게 마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오늘도 나는 국화밭으로 달려간다. 아마 올 가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화밭에 와서 마음을 힐링하며 돌아갈 것이다. 비록 인생은 짧지만, 삶의 가치와 의미를 심고 가꾸기엔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요즘이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