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이고,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도 가족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요즘 호스피스 병동에 봉사를 나가는데, 병동에 입원한 어르신들의 고백을 듣다 보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백이 참으로 많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어쩌면 그렇게 다들 아픈 사연들이 많은지 스스로 놀라곤 한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한다 싶은 이야기를 들을 땐 화가 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남이 불행한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루는 어느 어르신께서 내게 이런 속내를 털어 놓았다.

“노름에 기집질에 드라마에 나오는 것 보다 현실은 더해요. 그 더러운 세상, 인자와서 사랑한단 말 한마디 들을라고 살았던가. 죽을 날 받아 놓고 사랑한다고 합디다. 허허허 그런들 저런들 어쩔 것이요. 우리 영감이 잘생기지 않았소? 키가 187이여.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다가 5년에 한 번씩 나타나서 새끼만 배놓고 집을 나가블고. 잊어블만 하면 나타납디다.  우리 애들이 5년 터울인디 얼마 전 큰딸이 하늘나라로 갔소. 시어머니 시아버지 병수발에 내가 신참 간호사 보다 간병 더 잘하요. 기저귀도 내가 더 잘 가요. 이 양반이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링겔줄을 오드득오득득 씹어분단 말이요. 그래서 할수없응께 주사바늘을 발에다 놨다요. 입으로 못가져가게..우리 딸이 지그 아부지 만나면 반가할랑가나 모르것소....“

살다가 울고 싶을 때, 말하고 싶을 때, 소리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만,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이제야 말 할 수 있는 할머니는 이야기 중에도 할아버지가 불편하고 힘들까봐 살피시느라 두 눈과 두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사이에 몸부림치던 할아버지는 약발을 몸에 받았는지 조용해졌다.

나는 그 틈에 할머니도 좀 쉬시라고 권해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지난주만 해도 옆방에는 안경할아버지가 계시던 방이었는데, 그 사이에 천국행기차를 타버리고 다른 분이 와계셨다. 가슴이 서늘해지며 갑자기 인생이 슬퍼졌다. 지난 화요일만 해도 그 방에서 할아버지와 눈 맞춤을 했는데 목요일에 돌아가셨다니 맘이 너무 아팠다. 아무리 한번 왔다가 가는 게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다 보면 제일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아무도 모르는데 아웅다웅 싸우고 미워하고 속끓이며 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면 그런 사실을 잊고 또 미워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인간의 한계에 스스로 절망을 느끼게 된다. 이제 한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서 허영순 시인의 ‘12월은’ 이라는 시를 읊조리며 남은 나의 날을 의미 있게 살고자 다짐한다.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정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딸랑딸랑 소리에/가슴을 열고/시린 손 꼭 잡아주는/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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