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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면서한성수 번역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8.10.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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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또 가을이다. 이미 남하를 시작한 단풍은 지리산 전체에 맞불을 놓았다. 가을에는 아무 곳에나 눈길을 던져도 한 폭의 수채화다. 그런데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처절한 사투가 아닐 수 없다.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슬픈 비극이다. 이럴 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게 돼 있다’는 ‘생자필멸’이라는 사자성어가 튀어나온다. 이게 생명의 원리이며 자연의 이치기이기도 하다. 나뭇잎이 붉게 변하는 것은 나무들이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이지,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에 있는 영양분이 줄기로 이동하고 나뭇잎이 가지에서 쉽게 떨어지도록 연결 부위에 특별한 세포층이 생기는데, 흔히 둘로 나눠진다고 해서 '이층(離層)'이라고부른다. 이층은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거나 또는 미생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잎은 물을 공급받지 못하지만 광합성은 계속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엽록소가 파괴 되고 색소들은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낙엽을 나무의 눈물이라고 표한 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런 이별 때문에 사람들의 눈은 즐겁고 마음은 황홀해 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것도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그런 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삶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종교나 문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삶은 아이러니와 아이러니가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양탄자와 같은지도 모른다. 

내가 70평생 넘게 살아온 뒤안길을 돌아보면 나 역시 나무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봄을 보내고 풍성한 여름을 보내고 이제 가을에 접어 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지금 내 마음에도 그동안 겪어온 온갖 풍상들이 단풍처럼 그렇게 알록달록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기도 했겠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삶의 무늬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은 누구나 그런 과정을 거치는 법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그 이면을 살짝 드려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상처가 그렇게 알록달록 수놓아져 있을 것이다. 

독립적으로 떼어 놓고 보면 우리 개인은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이지만 세상이라는 덩어리를 놓고 보면 개개인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른다. 단풍에 물든 숲이 아름다운 것은 개별적인 나무들의 나뭇잎들 때문이듯 말이다.

서양 속담에 모든 건물은 한 장의 벽돌에 의해 시작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세상은 작은 조각모음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퍼즐과 같다. 한 조각이라도 부족하면 퍼즐은 맞춰지지 않듯이, 우리 개인은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조각모음인 셈이다. 다만, 자신이 그 사실을 인식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차이뿐이다. 여기에서 자기 가치와 자기 부정이 생겨난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 알아도 우리는 쉽게 생을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채봉 동화작가는 들녘이란 시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네 잎 클로버 한 이파리를 발견하였으나 차마 못 따겠구나/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 이 글을 마치고 잠시 베란다 창문을 여는데,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장엄하다. 저들도 이 가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보다. 깊어가는 가을, 아름답게 물든 지리산을 쳐다보면서 내가 내게 묻는다. “지금 너는 세상을 곱게 물들이고 있는 소중한 존재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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