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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에 대한 묵상 고종환 감성 스토리텔러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8.06.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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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는 ‘복을 싸 먹는다.’ 하여 예로부터 비타민과 무기질 등의 영양을 충족하기 위해 육류와 함께 먹는 쌈 채소로 활용되었다. 비타민C와 베타카로틴, 섬유질을 보충하고 피를 맑게 하는 작용을 한다. 상추의 원뜻은 천금채라고 하여 아주 귀하고 비싼 채소라는 뜻이다. (네이버 상추-나무위키)

봄에 텃밭 돌 고르고 흙을 기경하여 야채 씨앗을 뿌렸다. 남들보다 늦게 씨앗을 뿌렸고 밭 관리도 매일 하지 않고 시간 날 때만 드문드문 했지만 역시 상추는 기다려준 주인을 속이지 않고 변함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최근에 그렇게 자란 상추를 따서 지인들과 나누며 상추쌈 입에 가득 담아 먹는 소소한 행복을 누려보았다. 
아침 일찍 텃밭에서 상추를 따면서 느끼는 행복이 마음 바구니 한가득 담겨져 문득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추는 성경에 나와 있는 2가지 사건에 나오는 음식과 아주 유사하다.
첫 번째 사건과 음식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한 소년이 예수님께 자신이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드렸을 때 광야의 굶주린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 남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상추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가장 잘 설명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야채이다.  내가 가꾸는 3평 남짓 되는 텃밭에서 50명 넘은 주변 지인 선생님들과 나누어도 부족함이 없다.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어도 끝없이 이어졌던 것처럼 상추는 나누면 나눌수록 계속 새 잎을 내어 나누어준다. 내 착각 일이지는 모르나 따고 있는 그 사이에도 잎이 자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텃밭 상추를 다 따고도 하루 저녁만 지나면 충분히 먹고 남을 상추가  또 새잎을 띄운다. 

두 번째 사건과 음식은 만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노예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광야생활에서 그들에게 베풀어준 양식이 만나였다. 그런데 만나는 조건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공히 하루 먹을 분량의 일용할 양식 만나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결코 오래두고 보관할 수 있는 식량이 아니었다.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과 미래를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저장 보관했던 사람들은 그 다음날 썩고 악취나는 만나를 보고 쓰라린 낭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을 보게 되었고 내 삶이 행복하려면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하는 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는 나눔이요, 둘째는 때였다.
나눔과 때의 관점에서 보면 ‘나눔 실천이 가장 경제적이다’고 할 수 있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체험하여 보았느냐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추는 소유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성이 없는 야채이다. 지금 한창 상추가 출하되는 시기에는 상추가 넘쳐난다. 가격도 상추가 아니라 하추이다. 나 혼자 다 먹을 수도 없고 놓아두면 겉 자라서 맛이 쓰고 잎이 뻣뻣해져 나중에는 결국 나도 못 먹고 남도 못 주고 갈아엎어야 하는 헛삶의 후회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여린 새잎의 부드럽고 달콤함이 최상의 맛으로 혀끝에 다가오는 지금 현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인생 시계는 한 선 라인으로 되어 있지 않고  하루하루 점으로 이어져 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우연들이 인생이라는 필연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오늘 현재 지금 여기에 내가 누리고 나누어야할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다. 지금은 한 손에 상추를 한입 가득 담아 내 행복을 만끽하고 또 한 손으로는 상추 바구니 가득 담아 친구에게 나누어 주어야할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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