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벽을 바라본다, 벽 위엔 오죽하면 /못 하나 박혀있지 않다,/내 호주머니 속엔 오죽하면/끈 하나 들어있지 않다,/끈도 없고/못도 없다면/그렇군, 밀교신도처럼,/ 오직 나에겐 자가발전 밖에 남은 것이 없어‘ <슬픔과 놀며 詩 김승희>          

이 시를 감상하면서 나 역시 뚫어지게 벽을 바라보았다. 물리적인 벽만이 벽은 아니다. 내 가슴 속에도 수많은 벽들이 수시로 일어섰다가 무너졌다. 사람들 역시 스스로 벽을 쌓거나 또는 허물면서 그렇게 일생을 보내고 있다. 내 할아버지가 그랬고 내 아버지가 그랬고 또 내가 그러고 있다. 아니, 내 아들과 내 손자도 그럴 테다.  

그렇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벽에 될 때가 많다. 그런데다 끈조차 없다면 정말 난감하리라. 자기를 붙들어 맬 수 있는 연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없다면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끈과 끈으로 연결 된 세상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연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졸여가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몸부림쳐도 슬픔을 달래는 데는 역부족이다. 슬픔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에 잘 적응하려면 긍정과 희망만을 말해야 한다. 또 그런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픔을 마치 불치병 취급하면서 감추려고 한다. 다들 슬픔을 감추는 데 도사급들이 돼 있다. 어느 철학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언제 참된 의미에서 타인과 만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슬픔 속에 있을 때이다. 만남은 슬픔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그러나 슬픔을 말하기에 우리는 슬픔의 가치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만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감정의 감수분열을 할 수 있는 데 말이다. 

아, 자가발전밖에 남은 것이 없는 우리는 얼마나 가엾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때로는 슬픔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성장시키는 촉진제가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하여 올 가을에는 슬픔의 우물 하나 마련해야겠다. 저렇게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꽃들을 보고서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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