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소식이 없습니다. 영남과 호남지방은 낯 최고 3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며 도심의 오존 농도도 높아지며......."답답한 뉴스를 전하는 여자 기상캐스터의 목소리에도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공중파 방송의 파장에 따라 우리의 일상도 새로운 걱정거리를 떠안아야 할 것이고 앞으로도 날씨로 인해 사는 것이 점점 팍팍해질 듯하다. 도로를 달리며 얼마 전 심어놓은 논에 어린모가 노랗게 타들어가는 것을 보니  한 숨이 새어 나온다.

옆으로 이어진 수많은 논들이 어깨를 맞대며 갈증을 호소하고 있다. 논 가운데 모를 둘러싸고 있는 앝은 물도 곧 말라가리라. 야속하게도 하늘은 농부들의 애타는 속마음을 부채질하듯 쨍쨍하고 푸르다. 세상은 얼마나 더 뜨거워질 것인지 우리는 얼마나 더 참아야 비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큰 소나무 가지들이 늘어진 아래로 가득 물이 채워져서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선사했던 큰 호수는 이미 물이 말라버렸다. 그 곳에 가득했던 푸른 물은 지날 때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때때로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곤 했는데 제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바닥마저 쩍쩍 갈라진 그 흉한 몰골을 바라볼 때마다 거대한 자연의 주검을 보듯 마음이 착잡해진다. 집 앞의 계곡 물도 얕아지며 자연의 흥얼거림처럼 들리던 소리마저 희미해졌다.
 

더 이상 갈 곳 없이 갇힌 듯 좁은 공간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무심하다. 예전에 비해 작아진 그들의 세상이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미래를 모르는 것은 그들이나 우리나 매양 마찬가지인 것을....... 하늘에서는 우리가 물고기의 미래를 걱정하듯 조물주도 인간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의 깊이에 따라 헤아려지는 우리의 미래도 조물주는 볼 수 있을 듯하다. 더위에 지쳐 긴 가지가 꺾어진 꽃에 물을 준다. 꽃이 뿌리를 내린 마른 땅에 물을 한참을 뿌려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생기를 잃은 꽃들은 물을 뿌리자 마른 잎에서 후끈한 열기를 토해낸다. 꽃나무들은 물이 잎사귀에 닿자 기다리던 물임을 알아차렸는지 뿌리에서부터 가지, 잎 등 온몸으로 빨아들인다. 한참을 적셔주니 균형을 잃었던 가지와 잎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이제야 살았다는 그들의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오는 듯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잡초를 한웅큼 당기니 메마른 흙을 가르며 뿌리가 통째로 뽑힌다. 수분을 찾아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할 뿌리는 땅에 물기가 없으니 갈 곳을 잃어버렸다. 목표가 사그라진 잔해처럼 갈기갈기 비틀어진 잔뿌리들만 애처롭다. 자연은 항상 우리의 든든한 우산이라는 강한 믿음도 요즘은 조금씩 흔들린다. 언론에서는 제트기류나 열섬현상 때문에 앞으로도 이상 고온이 지속되리라 예보하지만 아마도 인간이 줄곧 키워온 문명의 후유증 때문인 듯하다.
 

자연의 훼손에서 비롯된 문명에서 생겨난 열병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예전보다 더 나은 자연환경이 우리 옆에 남아있을 것 같지 않다.
행복에 관한 한 미래는 과거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덧없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말라가고 낯익은 풍경도 기억도 허망하게 허물어진다. 지금 당장이라도 뜨거운 구름을 안고 있는 저 산 너머에서 
 

우르릉 쿵쾅 ! 천둥번개가 치며 비를 쏟아지게 한다면 답답한 내 가슴도 시원하게 뚫릴 것만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걱정으로 머물러 있을 텐데.......이 글을 마무리한 후 밖을 보는데, 비가 올듯올듯 구름이 가득하다. “비야,비야 제발 내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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