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탈색된 나뭇잎들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우수수 떨어져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렴, 이게 자연의 이치요, 인생의 문법이며 삶의 기호이다.

가을 끝물이다. 지난26일, 백운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SNS를 타고 날아들었다. 이렇게 해서 한 해도 서서히 마무리에 들어가는가 보다. 아마 누군가는 또 1년치 삶의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며 한숨과 후회로 가슴을 치기도 할 시간이다. 어느 시인은 이런 시를 읊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상처와 함께 동거하는 일이다. 흔히 죄를 짓기에 우리 인생이 너무 길고 그 죄를 변상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하지만 실수와 상처는 늘 반복된다. 차라리 이게 인생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훨씬 상처를 덜 받은 길일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이 짧은 사람도 요즘 같은 날에는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지게 마련일 터.

사유하며 흐르는 계곡물

그래서일까? 옥룡계곡 물소리도 여느 때와는 다르게 들려오는 것을 느낀다. 박재삼 시인은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라고 노래했다지만, 나는 ‘해질녘 울음이 타는 옥룡계곡을 보것네’ 라고  고쳐 부르련다. 누렇게 탈색된 나뭇잎들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우수수 떨어져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렴, 이게 자연의 이치요, 인생의 문법이며 삶의 기호이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스스로 놓을 줄 아는 가을 앞에 서서 내가 놓아야 할 욕망의 목록을 작성하며 옥룡 계곡의 가을을 배웅한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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