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 가을 풍경/ 백억선 作

          지금은 단풍도 직진 중이요, 내 그리움도 직진 중이다.
곳곳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시국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필 꽃은 피는 법이고 질 꽃은 지는 법이다. 자연은 우주의 물리법칙에 충실히 따른 뿐, 매정할 정도로 자기 길만 걸어간다. 요즘은 어디에 눈을 돌려도 ‘아름답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가을비에 젖어가는 풀잎도 그렇고 떨어져 바람에 뒹구는 낙엽 또한  마찬가지다. 하여 가을바람은 이렇게 속삭인다.  “단풍은 시속25km로 진격해오지만 그리움은 무제한으로 진격해온다”고. 맞다. 지금은 단풍도 직진 중이요, 내 그리움도 직진 중이다.

금호동 가을 풍경/ 백억선 作

단풍을 구경하지 못해 속상하다면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려보라.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그런대로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가까운 근린공원만 찾아도 만산홍엽이 그대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산천은 만산홍엽이요 마음은 그리움 홍엽이라고나 할까. 혹여, 일상에 발이 묶여 단풍구경을 가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금호동 ‘숲사이길路’ 산책길을 걸어보라. 그곳은 시방 단풍이 가을유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니, 와우생태저수지는 갈대와 부들과 물오리들이 가을과 작별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하다. 가을에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존재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광양읍 우산공원과 유당공원 역시 마찬가지다. 유당공원에 가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우산공원에 가면 삶의 이정표가 될 문장 몇 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되고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계절이다. 혹자는 대책 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을 애써 눌러 두느라 난감하기도 할 터인데, 그럴 땐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게 좋다. 마음도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한 번씩 방류해 줘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제
 그리움에 공소시효는 없다
사랑에 유통기한도 없다
이렇게 단풍이 짙게 물들어가는
가을날에는 이유 불문 하고 
일방적으로 네가 보고 싶어질 뿐이다
        홍석주 詩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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