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한 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좋고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돈, 애인, 그리고 책, 오늘날 우리 사람이 고단한 이유는 침 바를 일이 자꾸 사라지기 때문이다. 침 바르며 돈 셀 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월급은 계좌로 자동 이체되고, 계산을 카드로 한다. 나이 들수록 침 바를 일은 더더욱 없다. 참지 못하고 애먼 곳에 어설프게 침 바르다간 매우 위험해진다. 혹은 아주 '드~럽다'. 이제 침 바를 수 있는 대상은 책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 거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이다.

아무리 곱씹어도 기가 막힌 문장이다. 물론 멋진 미사여구하나 없이도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들고 있다. 나는 김정운의 이 문장을 접한 후 책에 침을 발랐다. 올 여름 당신 역시 책에 침 바를 일이 많았으면 싶어 일단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을 선정했다. 어떤 책은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내 책(冊)임이다. 

명사들이 권하는 책은 일단 집어치우기로 했다. 물론 이 기획을 구상하면서 이러저런 자료를 수없이 살펴보았고, 또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은 유혹도 느꼈다. 그런 유혹 중에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도 있었으며 또 비트겐슈타인의 책도 있었다. 아, 요즘도 나는 비트겐슈타인(검색하면 다 안다) 책을 짬짬이 보고 있다. 그러나 독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독서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산을 오르기 전에 집 뒷산부터 자주 올라 다녀야 하는 것처럼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읽으려니까 책이 어렵게 여겨지는 것이다.

솔직히 휴가철에 독서를 권하면 짜증부터 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독서처럼 값지고 수지맞는 피서도 없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피서(避暑 )는 피서(避書)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좋은 장소에 가서 소주만 마시고 고도리만 치고 온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 보기에도 좀 민망하고. 연설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번 피서 때 내가 추천하는 책인데, 이미 나는 모두 읽어치웠다. 읽지도 않고 권한다는 것은 음식을 먹지도 않고 권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렇다고 기부터 죽을 필요는 없다. 어려운 책은 한권도 없으니까. 나도 눈치는 빠른 사람이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봐서도 안 된다. 아마 오늘 권하는 책들, 2~3일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양이다. 왜냐하면 일단 어렵지 않고 또 내게 필요한 한 끼 식사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1.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이 책을 왜 권하는지 눈치 빠른 사람은 금세 알아챘을 것이다. 맞다. 평생직장이 막을 내린 요즘, 누구나 한번쯤 읽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문장 곳곳에서 저자의 진심과 마주할 수 있다. 책 서문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직장인은 죽었다.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직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 안에 있는 조직인간적 속성을 제거하라. 스스로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리하여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이런 외침을 듣다 보면 없던 자신감도 급상승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작가는 다른 싸구려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과 확연히 다르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이라는 책을 통해 일약 베스트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 책도 함께 곁들어 읽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참, 그렇다고 해서 바로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지 마시길.

2. 철학카페에서 문학하기

제목을 보고 혹시 주눅(?)이 들까 걱정부터 된다면 그럴 필요 없다. 말 그대로 카페에 앉아 저자의 수다에 귀만 열면 된다. 저자의 글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문학작품에 대한 기초지식부터 인문학의 안팎을 넘나드는 풍부한 교양까지 듬뿍 들어 있어 철학의 색다른 맛과 향기를 즐기게 될 것이다. 더러는 이 책을 읽은 후 철학과 문학을 깔(?)보게 됐다는 사람도 있으니, 당신도 이참에 꼭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편집을 잘해서 그런지 글자와 행간도 시원시원할 뿐만 아니라 삽화 역시 예술성이 짙어 오감까지 만족시켜 줄 것이다.

3.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그 유명한 법정스님의 잠언을 류시화가 엮어 아주 먹기 좋게 만들었다. 이 책은 점심 먹은 후 커피한잔 하면서 읽어도 아주 좋다. 물론 순서 같은 것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부담 없는 마음의 디저트라 생각하면 된다. 아마 글을 읽다보면 ‘평소 때 하던 내 생각을 글로 표현 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땐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그 소중함 마저 잃는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며,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4.모순

모순은 베스트작가인 양귀자가 쓴 소설이다. 독서가들치고 양씨의 소설 한권쯤 읽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 몇 권은 영화로 각색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 소설은 각 장마다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활달한 문체로 ‘삶의 모순’을 향해 달려간다. 얼핏 무의미하고 한없이 사소해 보이는 우리들 일상을 우수어린 정경으로 감싸 안으며, 독자로 하여금 그 일상 속에 감춰진 삶의 진상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다. 아마 읽어가다 보면 ‘내 얘기네’ 하며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의 삶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참, 이 작가도 한 때는 광양여중에서 국어를 가르친 적인 있었다는 사실. 

5.두 시간 만에 읽는 명화의 수수께기

솔직히 두 시간은 더 걸린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니 뭐 그럴 수도 있다. 혹시 나는 그림에 대회 문외한인데 하고 겁을 먹고 있다 해도 상관없다. 이 책의 특징은 대화로 풀어가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만 하면 된다. 내용은 13세기 조토에서부터 20세기 뒤상까지 거장 25인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대화체로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명화 감상의 길라잡이다. 이번 기회에 미술에 대한 안목과 지식을 쌓는 것도 크게 손해 가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각 페이지마다 삽입된 화려한 명화를 감상하다보면 눈도 아주 즐거울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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