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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심란해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공원 주변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겨울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노랗게 탈색된 낙엽은 마치 나도 한 때는 푸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노라며 절규하는 듯보였다. 하긴 왕년에 비까번쩍하지 않았던 인생이 어딨겠는가.
어느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건강한 사람은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건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위안도 잠시, 바람에 솟구치는 낙엽은 애써 진정시킨 내 마음을 다시 헤집어 놓았다.
그래서 차라리 신문이나 읽자고 펼쳤는데 책 광고 하나에 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머물고 싶은 남자, 떠나고 싶은 여자‘ 라는 책 제목과 ”나이만 먹은 것 같아 오늘도 울컥하는 당신에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는 문장 하나가 내 눈을 붙들었던 것. 순간, 괜히 신문을 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은 마치 못생긴 여자에게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남진의 노랫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잖아도 이 세상 거울이란 거울은 모두 깨버리고 싶은 여자에게 이 노래처럼 잔인한 것도 없을 터. 왜냐하면 못 생긴 여자를 두 번 죽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는 얼굴이 예쁜 사람에게나 해당 되는 노래다. 아닌 게 아니라 못생긴 것 때문에 속상해 죽겠는데 대 놓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표현의 차이만 조금 다를 뿐,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들 가지 싶다.
맞다. 나이가 들어가면 유리창에 빗물만 한두방울 떨어져도 가슴이 울컥 할 때가 있고, 색소폰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릴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모든 징표는 마음이 건강하다는 감정의 신호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겠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중년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내 인생은 지금 잘 발효된 포도주처럼 시나브로 숙성되어 가고 있는 중’ 이라고.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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