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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정중월이라는 한시를 처음 대했을 때, 나는 마치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 시인들이란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이 시만 내 곁에 있어도 나는 평생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취기어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깟 시시한 시 한편 가지고 너무 뻥을 친다고 핀잔을 줄지 모르겠으나, 그건 시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미안하지만, 원숭이들은 바나나 하나를 좋아 하지 금덩어리를 좋아 하지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금덩어리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럴 테다. 가치를 아느냐 모르냐 차이 일뿐, 다 소중하고 쓰임새가 있는 법이다.
특히 정중월이라는 한시는 곱씹을수록 더 깊고 융숭한 맛을 보여준다. 혹시나 요즘 결핍으로 인해 마음의 평화가 깨진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응급 처방전이 될 것이다. 이규보 시의 특징은 바로 자신의 개성을 발휘, 기존 한시에서는 쓰지 않았던 독창적이면서도 탁월한 명구절들이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이규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가 남긴 한시를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혹시 상처를 받고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다면, 이규보 한시를 안주 삼아 한번 시험해 보기 바란다. 한시가 제공하는 위로와 치유하는 힘을 경험하고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다.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에 사는 중이 달빛을 탐내더니/幷汲一甁中 (병급일병중) 물 긷는 병에 달까지 담았네/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가면 금방 알게 될 거야/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물 쏟으면 달도 없어진다는 걸'’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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