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하늘이 취했다. 온통 불그족족한 얼굴이다. 또 가을을 접수 한다

중국의 장자(莊子)선생이 그랬다던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이 말은 흔히 자아(自我)와 외물(外物)은 본디 하나라는 이치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생각하면 그렇다. 뭔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게 인생이요, 우리들 삶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또 우리는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며 그렇게 살아간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까지 담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사진작가처럼...비록 인화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가의 마음을 읽어내려 애쓰는 관람객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愛를 쓰게 되는 것이다. 물론, 늘 오해와 오독의 실수를 반복해 저질러 왔지만...

슬픔의 주기는 짧을수록 좋다. 울어도 하루요, 웃어도 하루니까

이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착각 또는 착시현상에 빠지게 될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그처럼 애지중지하는 삶이란 것도 알고 보면 착시 아니면 착각에 다름이 아닐 터. 그토록 믿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배신을 하기도 하고 또는 밑도 끝도 없는 오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한 생애를 다 소진하는 게 우리들 인생이다. 한 때는 죽고 못 살 만큼 사랑했던 사람도 아무것도 아니었단 듯이 스쳐 지나가는 날이 오고, 또 한 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때도 오는 법이다. 그러니 상처와 이별을 너무 가슴 아파 생각할 것 없겠다. 아니 견딜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밀치고 올라오거든 어스름한 밤하늘을 올려보는 것도 나름대로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이 세상의 모든 詩는 슬픔과 쓸쓸함의 산물이요, 이 세상의 모든 노래는 슬픔이 작사하고 상처가 작곡한 노래들이다. 하지만 슬픔의 주기는 짧을수록 좋다. 슬픔을 오래 끌게 되면 장기가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적당한 슬픔은 단비와 같아서 우리 영혼을 자라게 하지만 길어지게 되면 우리 육신을 망가뜨리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는 무엇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내 주변사람을 사랑하고, 살아있음을 사랑하고, 함께 손을 잡고 밤하늘을 쳐다 볼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라. 미워도 하루요, 사랑해도 하루요, 울어도 하루요, 웃어도 하루라고 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가을볕이 짧듯 우리 청춘도 짧고 우리 인생도 짧다는 것 기억하고 ‘지금’이 순간을 놓치지 마시기를, 이 순간에 부화하지 못한 것들은 끝내 곪고 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