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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할롱을 타고 고층아파트 창틈으로 날아온 풀무치 한 마리가 밤이 새도록 찰카닥찰카닥 가을을 짠다. 팔월 초이레, 상현달빛이 가슴에 젖어 들고 귀가 섧도록 울어대는 풀무치 소리를 듣노라니 유년의 강가에 던져진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그건, 신석정 시인의 <추석>이라는 시다. ??가윗날 앞둔 달이 지치도록 푸른 밤/전선에 우는 벌레 그 소리도 푸르리/소양강 물소리며 병정들 얘기 소리/그 속에 네 소리도 역력히 들려오고/추석이 내일 모레 고무신도 사야지만/ 네게도 치약이랑 수건도 부쳐야지.??
그 시절 우리는 명절과 성탄절이 돌아오면 국군장병 아저씨께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와 함께 위문품을 보냈다. 답장을 손꼽아 기다리며 보냈던 위문편지는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였지만 난 특유의 감성과 함께 주저리주저리 써 보낸 편지가 감동을 주었는지 가끔 답장을 받곤 했다. 명절 때 국군아저씨께 보낸 위문편지와 위문품은 그 시절 가장 뿌듯하고 보람 있는 행사였다.
내가 어미가 된 지금 신석정 시인의 <추석>이라는 시를 읊조리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건 군에 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명절을 함께 보내고픈 부모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소양강 물소리에 아들의 목소리를 전해 듣고픈 간절한 어미의 심정 속에서 나는 일 년 후면 군대를 가게 될 아들의 얼굴을 벌써 그리고 있었다.
요즘 우리는 군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아있다. 군 조직의 폐쇄성과 악습, 불통으로 인해 곪아 터진 일련의 사건들과 가혹행위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황들을 보고 자식을 둔 부모들의 입장은 좌불안석이다. 누가 이런 적나라한 악습의 자태를 보고 자식을 마음 놓고 군대에 보내겠는가? 모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영문화 개선과 군 인권의식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믿음을 줄 때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시에서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구절은 명절에 신을 고무신도 사야지만 자식에게 치약과 수건을 먼저 사서 위문편지에 함께 동승하고픈 어미의 심정이다. 시의 느낌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다르다는 걸 <추석>이라는 시에서 더 느끼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읊었던 추석이라는 시는 그 당시 부모의 심정이 아니었고 오직 추석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이 시를 읊조렸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시였을 것이다.
신석정 시인은 우리 문단에 목가적인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신석정 시인의 작품을 읽고 해석하며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데 특색이 있고, 맑은 시정(詩情)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전원적, 목가적, 낭만주의적 시풍으로 기억되는 신석정은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풍경화 한 점을 보는 듯하다.
달이 점점 커져가는 팔월 초이레, 달빛에 젖어드는 시 한 편에서 추석을 먼저 느끼며 어린 시절 보름달 아래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 동요를 부르며 함께 뛰어 놀던 동무들의 모습이 그리움 되어 달빛에 스며드는 순간, 시구(詩句)처럼 달이 지치도록 푸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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