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유난히 꽃밭을 잘 가꾸셨다. 소박한 어머니의 꽃밭은 여름이면 꽃들이 풍성하다. 봄꽃보다 여름 꽃을 더 좋아하신 어머니는 봉숭아, 나팔꽃, 맨드라미, 분꽃, 꽃술이 풍성한 산나리, 키가 크고 잎이 넓적한 빨간 칸나 등 다양한 여름 꽃을 가득 심고 조화롭게 배치 하셨다. 특히, 키가 작은 채송화는 우리 집 앞마당 돌 틈과 금이 간 항아리 속에서 곱고 다양한 색깔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어머니의 꽃밭을 풍성하게 했다. 키 큰 빨간 칸나도 넓적한 입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고 봉숭아는 울밑에서 씨방을 통통하게 채워갔다. 동생과 나는 봉숭아꽃잎을 콩콩 찧어 열손가락에 소복이 얹어 비닐로 꽁꽁 동여맸다. 밤새 꽃물이 예쁘게 들여지기를 기원하며 잠을 설치곤 했던 그 시절 어머니의 꽃밭은 내 문학의 본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시간 눅눅한 습기 사이로 어머니의 술빵 찌는 냄새가 솔솔 스며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노란 술 주전자에서 막걸리를 벌컥벌컥 따르며 검은 빛깔의 밀가루에 붓고 휘휘저어 발효를 시킨 후 넓적한 칸나 이파리를 툭툭 끊어 쇠솥에 깔고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술빵을 쪄 주시곤 했다. 궁핍 했던 어린 시절 술빵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허기진 배도 포만감을 느끼며 어머니의 꽃밭에서 뛰어 놀았던 우리 형제들, 알록달록한 채송화 꽃만큼이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머니가 떠나가신 후 어머니의 꽃밭은 오빠 스타일로 새롭게 단장 되었다. 청포도 넝쿨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새로운 유실수들이 옹기종기 심어졌다. 하지만 어머니가 심어 놓았던 산나리는 아직도 뿌리가 번성해 건실한 주황색 꽃을 피워냈다. 주황색 꽃잎에 검은 반점이 박혀 있는 꽃잎이 호랑나비처럼  펼쳐지면 어머니가 환하게 웃는 것처럼 나도 덩달아  미소가 머금어 진다. 

 

나는 꽃을 좋아하지만 심고 가꾸는 일에 늘 실패한다. 물주기를 소홀히 하거나 화초의 특성을 잘 이해 못해 번번이 죽이고 만다. 몇 해 전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베란다 한켠에 작은 꽃밭을 만들었다. 비교적 기르기가 쉬운 다육식물부터 전시회 때 누군가가 버리고 간 서양 난과 관엽 식물들을 데리고 와 물을 주고 정성을 주고 말벗이 되어주며 그렇게 기르기를 몇 년 이젠 제법 근사한 꽃밭이 되었다. 서재와 함께 어우러진 베란다 꽃밭에서 나는 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고 더러는 시를 감상하며 혼자만의 나르시시즘에 빠지곤 한다. 

 

비갠 뒤 여름 한 낮에 찾아온 <어머니의 꽃밭>에서 나는 호랑나비가 되었다가 꿀벌이 되었다가 그리운 어머니를 추억하며 휑한 마음 한 자락 물들인다. 더러는 꽂혀있는 책장도 뒤적거리며 다시 정리해 볼일이다. 그 안에는 오롯이 남아 있는 소중한 나의 기록도 흔적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 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