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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제목이 좀 불온하다. ‘설마?‘라며 눈동자를 크게 치켜 뜰 사람도 있겠다. 물론 ‘페티시즘(Fetishism)’라는 단어가 우리들에게 그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인 매개물에만 적용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이 단어의 원래 뜻은 ‘어떠한 사물에 초자연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어 이를 숭배하는 일’ 을 지칭한다. 일종의 주물(呪物) 숭배인데 그래서 더러 물신(物神)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맞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숭배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신을 또 어떤 사람은 명예나 돈을 숭배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쾌감 즉 보상이 없는 숭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은 여자의 속옷만 수집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기도 하는데, 그는 직접적인 여인의 살 냄새보다 그런 매개물을 통해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해결하는 셈이다.
내게 있어 페티시즘은 책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번민에 사로잡힐 때, 나는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습관처럼 책을 한 번 쓰다듬는다. 그러면 말 할 수 없는 쾌감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어느 새벽, 쓸쓸함이 귀신처럼 몸과 마음을 점령하고 있을 때, 김수영의 시는 나를 구원하는 메시야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메시야’는 다시 ‘메시지’로 바뀐다. 아무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가벼운 우울증이 있게 마련이고 터놓을 수 없는 비밀 한가지쯤은 감추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숨겨놓은 애인도 없고 그렇다고 술집에 가서 마음 놓고 쓸 돈도 없다면 한 권의 책을 사서 보라.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순간, 그대는 황홀한 페티시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홍봉기 기자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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