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번역가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솔직히 대한민국이 법치주의가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서민들에게는 제왕으로 군림하는 법이 기득권자들에게는 시녀 노릇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눈꼴사나워 못 볼 지경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추징금 문제도 그렇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나 김용판 전 서울 경찰청장의 대선개입문제도 그렇다. 그들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할 법이 오히려 그들 눈치 보기에 바쁘고 여차하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갈 모양세다.

그러나 법이 공평성을 잃을 때는 나라의 질서가 잡히지 않는 법이고, 그렇다고 형평성을 잃게 되면 또 서민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되는 데, 그만큼 예민한 게 법이라는 말이다. 나는 법이 길을 잃을 때마다 눈을 감고 저울을 들고 있는 디케(Dike) 여신상을 떠올린다. 디케란 그리스어로 ‘정의, 정도(正道)’를 뜻한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질서’를 뜻하는 에우노미아와 ‘평화’를 뜻하는 에이레네의 자매이다. 이 세 자매를 계절의 여신 호라이라고 하며, 이들은 계절과 자연의 질서를 상징한다.

로마시대에는 디케가 유스티티아(Justitia)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는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디케는 미술 작품에서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티아는 여기에 형평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저울이 더해졌다. 저울은 형평성을, 칼은 엄격성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좀 더 재밌는 것은 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조명 단위를 lx(럭스)라고 하는 데, 바로 여기에서 렉스(lex) 즉 법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는 사실이다. 1lx(럭스는 라틴어로 '빛'이라는 뜻)는 고르게 비칠 때 얻어지는 빛의 밝기를 가리키듯, 법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되어야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는 한자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흘러갈 법(法) 자 역시 라틴어와 서로 상통하는 글자다. 원래는 해태 치 자가 하나 더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글자는 사라지고 지금의 글자가 되었다. 잘 알고 있다시피 순리대로 흘러가는 게 물의 고유한 속성이듯이 법 또한 힘이 있건 없건, 부자건 가난하건 공평하게 집행 되어야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법이 그런 공평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따지고 든다면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은 해방이후부터 권력자들의 손에서 놀아났기 때문이다. 말만 독립성을 보장받았을 뿐, 현실은 전혀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법, 서민들의 밥그릇을 지켜주지 못하는 법은 이미 법의 자질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악을 보호하고 두둔하는 아이러니를 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석가모니의 자비이다. 그 마저 없다면 힘없는 우리 서민들은 어디에 마음 한자락 붙이며 살아가겠는가. 아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물론 이문장에 얼마나 체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데스크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