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상 서재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40년 목회생활하고 남은 게 있다면 사실 책뿐이다. 아니, 미국에서 목회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나올 때 제일 먼저 한 게 책을 컨테이너박스로 수송한 일이다. 나는 늘 하느님도 부처님도 공자님도 한권의 책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농을 던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태초에 말씀(책)이 있었다는 성서의 선언은 실로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이렇게 문명을 발달시킨 것도 책이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제 아무리 첨단시대가 된다 해도 인간은 스스로 사고를 해야 하고 또 창의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도태하게 돼 있다. 그런 사고의 밭을 갈게 하는 쟁기질이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책을 우습게 여긴다. 하긴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지다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책 읽기가 수월해졌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책은 단순하게 읽는 것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가에 꽂혀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공 받기도 한다. 출판사는 한 권의 책을 펴내기 위해 오랫동안 편집회의를 했을 테고 저자는 밤새 시간과 싸우며 악전고투를 했을 것이다.
그들의 수고를 단 돈 몇 만원에 소유할 수 있다는 자체가 미안할 정도다. 언젠가 모 포털에서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를 둘러보았는데, 역시나 위대한 인물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모두 자기만의 서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위대한 사고는 서재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살아가기도 빠듯해 죽겠는데, 감히 서재라니? 하고 코웃음을 칠는지도 모르겠지만, 서재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 그냥 작은 책꽂이를 겹겹으로 쌓아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나 관심 있는 책으로 채우기만 해도 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부잣집에는 금박이 박힌 전집류를 꽂아두고 자신의 체면을 세우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체면치레마저 사라진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요즘 들어 정부까지 가세해 창조경제라는 말을 들먹거리는 모양인데, 자기만의 서재가 없다면 이 또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이 홀로 외롭게 늙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안하지만 서재가 빈약한 사람은 사고도 빈약하게 마련이고 사고가 빈약한 사람은 감성도 빈약하기 때문에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기가 힘들게 되는 것이다. 노후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서재 하나쯤 장만하는 것은 어떨까? 나도 곧 있으면 70줄에 이르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서재를 통해 나의 감성계좌를 충분히 채워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와 가슴이 텅 빈 노후대책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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