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태 도예가

시린 겨울하늘과 함께 흔들리던 솔잎들이 마당가로 흐트러 떨어지며 한가한 오전이 흘러간다. 한동안 때이른 폭설이 뒤덮고 땡땡 얼어버린 땅을 보니 이젠 정말 깊은 겨울이지 싶다.
이즈음이면 우리 가족은 이틀마다 하루땔감을 구하러 산길을 걷는다. 사계절, 우리 눈을 호강시켜주던 풀잎, 꽃잎은 모든 기운을 뿌리로 내려두어 허전한 산길, 대신 제 몸을 거두어 따듯한 겨울을 잘 보내라는 듯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을 골라 지게로 져 나른다. 아이들은 당연히 힘들어 하지만 아빠의 수고로움도 이해하고, 아낌없이 주는 자연을 느끼기에 좋은 수양시간이다. 넷이서 거들면 금방 끝나는 합심의 힘을 이때 확인할 수 있다.
바스락거리는 눈을 밟는 설레임과 옷을 벗은 나무들의 또 다른 얼굴들...흙 만지느라, 집안일보느라 보지 못했던 자연의 빛깔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잠에 들었나보다. 맞아! 바쁜 일상에 젖어 있다 보면 놓치게 되는 소중한 것들이다. 아침나절 앞뜰에서 아내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차 한 잔으로 나누는 바람과 구름 이야기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 건조중인 흙을 덮느라 분주했던 일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른 봄, 추위를 이긴 매화꽃망울을 기특해하며 웃던 아내의 얼굴, 아이들과 나무썰매를 만들어 얼음 위를 신나게 달리던 기억, 낮에 패놓은 장작으로 온 집안을 뎁혀 따듯한 평온을 누리는 행복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자연이 가르치고, 자연의 허락 없이 누릴 수 없는 우리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면 옥룡 마을에 들어오고부터 우리가족은 사회의 전반적인 경쟁에서 더 멀어지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었다. 불편함을 인정했고, 몸소 거기에 빠지기로 했다. 물론 자연에 묻혀 살아도 ‘비교'라는 습관에서 빠져나오기가 싶지는 않았다. 비교라는 잔인한 저울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소비를 조금씩 줄이고, 마음을 살찌우면 절대 경쟁의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집이 자연에 머물러있으면 자연이 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넉넉해진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을 선물로 제공해 준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현대인들이 자연을 멀리함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데 있다.
사실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의사는 자연이라고 했다. 혹시나 불안하거나 경쟁심 때문에 초조해 한다면 혼자 자연을 걸어보라.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심신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홀가분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숲은 신의 최초의 신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시인은 자연과 시간과 인내라는 이 세 가지가 가장 위대한 의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흙을 실어 오고, 그 흙을 수비하며, 건조하고 그 많은 과정 중에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내가 흙을 빚는 게 아니라 흙이 나를 빚고 있구나” 아무리 겨울이어도 햇살이 들면 온 집안이 따듯하다. 봄,여름,가을 바쁜 일상을 보낸 스스로에게 게으름을 권장해도 좋을 겨울의 한복판, 오늘저녁엔 아들내미도 좋아하는 늦게 뿌린 배춧잎을 삶아 뜨끈한 시래기 국을 아내가 끊여준단다. 온가족이 후루룩 뜨끈하게 마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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