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현 광양교육지원청 장학사

필자에게는 중3 딸아이가 있다. 슬하에 자식이라곤 이놈 하나뿐이다. 박복(薄福)한 탓인지 아무튼 그렇다. 애비로서 무슨 죄인도 아닌데 이놈이 버럭 화라도 낼라치면 언제부턴가 미리 마음이 움츠러드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특별히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할라치면 화가 뱃속 밑바닥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결국 딸애 앞에서 그 맘을 보이지는 못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 학부모로 사는 이들의 평균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로서는 늘 그 정도로 밖에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슬픈 일이다. 어디 이런 경우가 나만의 일일까 싶다. 얼마 전, 친구 가게를 지나치다 들러 차를 한 잔 마실 일이 있었다. 그 친구 또한 나처럼 딸만 하나를 키우고 있다. 덩달아 딸아이가 같은 또래다. 동병상련일지 모르지만 자식 키우는 애비의 심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찻상 위에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박혔다. ‘금연’이었다. 속된 표현으로 ‘골초’였던 친구가 웬일로 그런 맘을 먹게 되었냐고 물었다. 친구의 대답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안아보고 싶다고 하면 “으~~~ 담배 냄새”하면서 “아빠는 담배가 좋아? 딸이 좋아?”라고 묻더란다. 그날로부터 금연을 결심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필자에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애연가다. 내가 아무래도 친구보다는 딸을 덜 사랑하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상당 기간 동안 ‘사교육비와의 전쟁’을 선포까지 하며 ‘소리 없는 전쟁’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사교육비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쟁이라 하면 사생결단의 각오로 벼르고 벼르는 절박함이 함축된 정책적 중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여전히 수십 년을 진행형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뭔가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난관(難關)이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그 해답을 모르기에 이러는 것인가? 이제는 우리 학부모들이 솔직해질 일이다. 어쩌면 저 위쪽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는 높은 분들부터 ‘나눔과 배려’의 심정으로 고백할 일이다. “‘해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해답대로 제도를 바꾸기에 내가 가진 기득권이 너무나 아깝다.”고 말이다. 그렇다. 답은 명명백백하다.
우리 사회를 한 줄 세우기식 학력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 ‘학벌중심의 사회로부터 해방’하는 일, ‘재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이룩하는 일, ‘지적 능력으로 아이들을 재단(裁斷)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들이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학부모가 행복해지기 위한 우선적 과제일 것이다. 다양한 개인의 재능을 발굴하고 계발하도록 교육할 수 있는 학교 문화, 그래서 직업의 귀천을 거론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성세대 모두가 해결해서 물려주어야 할 어른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그리고 그 결과를 겸허히 존중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모습이라며 우리는 유행가처럼 남의 아이들 앞에서 부르짖곤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가정에 돌아가서 자기 자식 앞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최고이기 만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가 돌이켜 생각해볼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집에 들어가면 딸아이 공부 방해된다며 재미있는 연속극의 볼륨을 자유롭게 높이고 시청도 못하는 애비로 살아가야 하는가? 결국 모두가 4%의 행복한 1등급 부모로 살수는 없다. 상당수의 학부모가 자녀의 학력문제로부터 행복을 경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4%의 1등급 부모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좇아 아이를 밤늦도록 학원에 내모는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반복하며 살 것인가? 4% 1등급에 들지 못해서 3류 국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많은 우리의 미래 자손들이 이제는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자식이야기를 할 때 대학 간판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부모가 이제는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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