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홍 조선대 교수

수원 여성납치살해사건으로 경찰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10만 경찰의 총수인 경찰청장이 경찰의 무성의와 미흡한 현장대응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하였다. 경기경찰청장 역시 그 뒤를 따랐다.
20대 여성이 퇴근길에 조선족 남성으로부터 납치를 당했고 감금된 상태에서 급박하게 112 신고전화를 하였다. 폭행과 강간을 당하는 피해여성의 음성을 수화기를 통해 무려 8분여 동안이나 들으면서도 112 근무 경찰관은 이 피해자의 생명을 구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동료 경찰관에게 “...부부싸움 같은데”라고 말하는 등 급박한 현장의 위기감조차 감지해 내지 못하는 미숙함을 보였다. 피해자는 자기 생의 마지막 전화를 경찰에게 걸었다. 경찰이 자기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의 무능함을 미리 알았더라면 차라리 자신의 엄마와 마지막 통화를 했으리라. 국민들의 경찰에 대한 공분은 정당하다. 비난의 화살이 경찰의 무성의와 범죄예방 및 범인검거에 있어서의 경찰의 무능력에 몰려있는 작금에 한국경찰의 실무와 선진국의 경찰학을 공히 접해본 필자는 문제의 본질을 약간은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한다. 먼저 강제로 납치당해 폭행을 당하며 목숨의 끝자락에 서있는 여성의 급박한 구조요청을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오인한 경찰관의 무능함을 살펴보자. 필자가 한 경찰서 112 센터의 지휘관으로 근무할 당시의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술 취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신고를 하였다. 즉시 형사 등 경찰관 30여명을 현장에 급파하였다. 허위 신고였다. 놀다가 학원비를 다 써버린 이 여학생은 부모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거짓 신고를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경찰은 하루 평균 2만 7천여 건의 112 신고전화를 받는다. 이 중 3분의 1은 이런 허위신고이거나 처지비관 또는 하소연성의 전화다. 수원사건이 발생한 바로 며칠 후, 대전지방경찰청은 “남치당해 트렁크 안에 실려 있다. 나를 곧 죽이려한다”라는 112 신고를 받고 휴대전화위치를 추적한 후 경찰 60명을 급파했다. 수원사건 바로 직후라 경찰의 검문검색과 탐문조사는 마치 비상사태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어느 술 취한 남성의 허위 신고였을 뿐이다. 이렇듯 허위신고가 많다보니 112 근무자는 어느 신고가 진짜이고 어느 신고가 허위인지 금방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급박한 신고전화를 받고도 112 근무자는 먼저 그 긴박성에 공감하기 보다는 그 전화가 가짜인가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수원사건의 경우 신고전화를 받고 부부싸움으로 오인한 112 근무자의 실수가 십분 이해되는 이유다. 두 번째 문제는 시민들이 경찰의 범죄예방능력과 범죄해결능력을 심히 과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40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순찰을 늘리고 범인을 체포하는 것만으로는 범죄를 줄일 수 없다는 연구를 발표해왔다. 범죄를 예방하고 줄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아빠들이고 엄마들이다. 형과 누나와 선생님들과 성직자들, 친구들과 직장동료들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이 바로 범죄예방과 범죄와의 싸움의 최일선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비공식적 사회통제에 참여해야한다. 한 사회를 범죄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바로 시민들, 즉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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