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준 광양고등학교장/소설가

지난 12월 23일은 학생축제인 ‘희양제’가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열렸지요. 광양의 옛 지명인 ‘稀陽’에 붙인 희양제의 올해 주제는 ‘꿈·知·樂’이었습니다. 꿈지락, 꼼지락? 꼼지락거린다는 활동성을 담아내는, 뛰고 노는 축제를 지향하겠다는 아이들의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얼마나 잘 놀까!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정규수업 시간에 축제를 위해 꼼지락거리려는 아이들과 이를 불허하는 선생님들 사이의 만만치 않은 힘겨루기가 준비 기간 내내 팽팽했습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만 연습을 허용하기로 했거든요. 꼼지락꼼지락 무언가를 일궈내는 아이들의 연마 모습을 올해는 지켜보질 못했습니다. 축제 연습하는 동안에 제가 이런저런 일로 야·자 시간까지 남아 있은 적이 몇 차례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함에도,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는 학생활동이기에 좀 더 돋보이는 행사가 되길 고대했습니다.
염원, 딱 한 가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가 TV 축소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방이 창조를 잉태한다는 건 오래된 지적입니다. 문제는 그쯤에서 너무 흡족해 하고는 거기서 딱 멈춰버리려는 경향이 짙은 때문이었습니다. 조금만 색다르게 하면 참 흐뭇하겠는데, 아이들은 한사코 TV 프로그램의 모사, 모방을 최고로 치고 말 뿐이었습니다. 그 동안 이곳저곳의 학교 축제를 지켜보면서 갖게 된 고착화된 관전평입니다. 잘 하든 못 하든, 조금만 더 자신들의 색깔을 덧칠해서 무대에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요망사항을 주관하시는 선생님께 긴요히 요망했습니다. 가르침이란 따지고 보면, 응용의 힘을 길러주는 의도적 행위잖아요. 그 의무를 외면하면 기실 학교 문 닫으라, 요구받을 텐데도 이를 꽤는 무시하고 가는 게 지금까지 혹 앞으로도 얼마동안 그러할 학교거든요.
축제날에는 마치 연출자인 양 폼 잡고 무대를 종일 지켰습니다. 총 3부로 이뤄진 축제는 꽤 강행군이었습니다. 반별 발표, 동아리 활동 결산 등의 1, 2부를 마치고 저녁 시간에 이뤄지는 3부가 축제의 중심입니다. 아이들은 여기에 집중하지요. 끼 있는 아이들로 이뤄지는 무대입니다. 열광의 밤이 되길 바란다고 오프닝 멘트를 했습니다.
이날만큼은 거리낌 없이 출입이 허용되는 탓에 여학생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찬조 출연하는 이웃 여고의 모델부와 여중과 동광양쪽 어느 고등학교의 댄스팀이 있다 보니 그러기도 한 듯합니다. 남자친구의 초대에 응하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갤럭시 탭(스마트 폰)으로 콘티를 읽으며 사회자가 쫄지 않고 진행해 나갔습니다. 랩에 맞춰 야광막대를 흔들고, 여학생들의 댄스에 무대 곁으로 우루루 몰려와 흥겨워하는 모습이 좋았음에도 어딘지 2%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껏 빠져 들었으면 좋겠건만, 하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아이들의 엉덩이와 손과 발이 들썩들썩, 얼쑤덜쑤 덩달아 움직였으면 참 좋아 보이겠다는 마음이 솟고라졌습니다. 허나,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손을 흔들 줄 몰라 했습니다. 추임새 크지도 않았습니다. 분위기 무르익어 가는 데도 공감의 폭 더 넓히려는 동작은 표출되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습니다.
함께 노는 것! 이게 바로 창의(創意)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는 향유자에 그치고 맙니다. 놀이에 덩달아 끼어야 합니다. 춤 추고, 노래 부르고, 추임새 넣고, 함성 지르고 그래, 겹고 겨워 감동에 이르는 축제, 그 속에 자신을 몰아넣고 즐기는 게 창의력이고, 창조자입니다. 축제의 밤이 깊어갈 즈음, 아이들이 슬몃슬몃 일어나더군요. 애늙은이인 줄 알았던 아이들이 발을 구르고 팔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이거야, 했습니다! 정작, 저는 못 놀아 본 사람이었습니다.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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