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 수 순천 하늘씨앗교회 목사
또 가을이 온 모양이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고, 떨어지는 낙엽하나 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나처럼 70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테다. 물론, 젊은 사람이야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돌아보면 마치 잠을 잤다가 막 깨어난 것처럼 모든 게 꿈만 같다. 굳이 장자처럼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이 나이에 이르면 오가는 계절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법이다. 인생이란 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늘 황금 같은 시간을 흘러 보낸 뒤에서야 그 때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깨닫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는지 모른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하지만 막상 꽃봉오리를 피우는 그 순간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꽃봉오리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아차! 하는 게 인생이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있는 동안에는 물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물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숨을 헐떡거리며 후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자도 지난주에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움직일 여력이 남아있을 때, 내 고국산천을 한 번이라도 더 밟아보고 느껴보자는 나름대로 절박감 때문에 집을 나섰다. 아직 가을이 깊어지지는 않았지만, 추수가 끝난 들판과 언덕에서 하얀 손을 흔들며 춤추는 억새를 보니 가을이 이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을 나올 때는 세상의 복잡한 소리들 다 버리고 가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그렇게 하질 못했다. 불쌍한 바닥인생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신앙(信仰)이란 신앙(辛仰)이라고 설교해 왔다. 믿음생활이란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 혼자 도통하고 나 혼자 행복 하느니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불행을 나누는 게 예수의 길이기 때문이다. 김진숙은 지금 고공크레인위해서 노동자들을 위해 철 십자가를 지고 있는 셈이다.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렇게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버림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그렇게 자기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녀가 해 주니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명색이 목사라는 나는 이렇게 영적인 타령이나 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목사 짓을 그만 두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요즘 기독교를 항해 개독교라고 독설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다. 그 말이 대부분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바벨탑 쌓기에 혈안이 돼 있고, 틈만 보이면 대형교회를 흉내 내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쓰고 있다. 나는 둘레길을 걷는 동안 정말 참회를 하고 또 했다. 둘레길을 무사히 돌고 마을로 내려오는데 노을 진 모습이 장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아니었다. 붉은 노을이 마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이 토하는 핏빛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혀 왔던 것이다. 그래서 목사라는 사실이 그렇게 부끄럽고 미안할 수가 없었다.
다음 생애에 또 태어난다면 목사짓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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