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의 노인들은 다른 나라 노인들과 달리 갖은 고생을 한 세대입니다. 그들은 6·25전쟁을 겪고 폐허 속에서 자신의 사생활도 돌보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려놓는데 온 몸으로 기여해온 세대입니다. 몇 년 전 이혼한 후 종적을 감춘 아들의 손자를 맡게 된 어르신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르신은 손자들이 등교하고 나면 작은 캐리어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다녔습니다. 달력에 빼곡히 써 놓으신 그날그날의 폐지 수입액(이천 원, 삼천 원, 적으면 아예 수입이 없다고 0을 기록하시고, 많으면 만 원이 기록되어 있기도 했지요)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캐리어를 끌고 그 어르신은 안전한 길로만 다니셨을까요? 빈곤과 싸우시는 어르신의 핵심적 문제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우리 지역은 과연 노인들의 교통안전, 보행 안전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의 교통안전 문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새로운 사회 문제의 하나로 논의되어 오고 있고, 정부나 각 지자체도 노인들의 보행안전을 위해 크고 작은 노력들을 기울여 오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2010년 지역별 교통사고통계’에서 전국의 광역지지체중 노인 사망자 비율이 40.2%로 가장 높은 곳이 전국에서 농촌 비율이 가장 높은 전라남도였다는 결과는 광양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겠습니다. 하루에 200-300명의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있는 중마노인복지관 입구는 내리막길에 위치하고 있어 자동차들의 과속이 염려되는 지역입니다. 바로 ‘도로교통법 제 12조2항’에 ‘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근거한 제대로 된 노인보호구역(소위 실버존(Silver Zone)) 지정이 매우 필요한 지역입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라 하더라도 과속방지턱 하나 없거나 서행을 점멸하는 등 하나 없는 곳은 물론이고 보·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이나 울타리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도 많다고 하며,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마노인복지관 입구는 광양경찰서와 시청의 노력으로 횡단보도와 방지턱을 설치하였으나 앞으로 실제적인 형태의 방지턱, 서행 점멸등, 울타리나 어르신들이 기댈 수 있는 구조물 등의 보완으로 실제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실버존(Silver Zone) 설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실버존 설치가 가장 저조한 전라남도는 전라남도 노인복지관 협회를 통해 복지관 주변이나 지역사회 내 실버존 설치의 실태 및 욕구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광양시가 이 기회에 노인을 위한 지역사회임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시각에 맞춘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비단 주택설계나 용품들의 모양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불편한 정도가 큰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편하고 적합하다고 느낀다면 대다수의 조금 덜 불편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전혀 혹은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노인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는 바로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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