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도시 경쟁력은 文化가 좌우한다!”

도시전체가 문화로 디자인된 고장
지난주, 광양여성작가회와 통영한려작가회 교류전 취재차 통영에 다녀왔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는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광양에서 통영까지는 기껏해야 1시간 남짓이지만 훌쩍 떠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통영은 자타가 공인하는 예향의 고장이다. 우리나라는 곳곳이 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 많지만, 통영처럼 도시자체가 문화로 디자인 된 곳은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다. 특히 통영 앞바다 위로 쏟아지는 부챗살 같은 햇살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멀미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환상에 빠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꽃의 시인'으로 너무나 유명한 탐미주의작가인 김춘수도 이런 통영의 바다가 만들어낸 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통영은 외형적으로는 광양시와 여러모로 닮은꼴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도시다. 인구도 15만정도로 광양시와 비슷하며 바닷가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문화적인 수준은 광양시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화의 내공이 빵빵한 통영
통영은 그동안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한 문화의 저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로 명성이 자자하다.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떨친 윤이상도 통영 출신이며, 꽃의 시인 김춘수와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을 흔들었던 청마 유치환 시인도 통영이 배출한 시인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용주 화가와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마찬가지며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등 내로라하는 많은 문인들이 통영출신이다. 통영이란 이름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다. 선조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비로소 통영이라는 명칭이 시작되었다. 또한 충무시(忠武市)의 본 지명은 통영군이고,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 하였으며, 통영이나 충무시의 탄생은 삼도수군통제영과 충무공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통영이라는 지명이 예전에는 전쟁과 관계가 있었다면 지금의 통영(統營)은 예술과 문화를 거느리고(統) 부가가치를 창출(營)하고 있음을 내포하는 지명이 되고 있다.

문화는 미래 산업의 꽃
사실, 문화가 대안이라는 말은 많이 하고 있지만, 광양시는 여전히 문화의 내공을 축적하는데 있어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대부분 추진하는 사업들도 토건사업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실적주의 때문에 그럴 것이다. 도시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광양은 광양제철소 때문에 철의 도시라는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써는 그뿐이다. 물론, 광양 제철소 덕분에 광양은 유명해졌고 또 막대한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문화적인 발전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문화란 게 하루아침에 꽃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도시의 연륜이 짧은 광양시로써는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닐테다. 당장 경제적인 부가가치로써만 문화의 의미를 추구한다면 제대로 된 문화의 꽃은 한 번도 피워보지 못한 채 늘 땜방식의 문화잔치에 그치고 마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말 것이다.

광양, 지금이 문화산업 육성의 기회
하지만 현재 도시 경쟁력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광양시로써는 지금이야 말로 문화산업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볼 수 있다. 통영이 문화산업으로 벌어드리는 수입은 광양제철소 수입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니, 자연환경보존의 가치로만 따진다면 훨씬 앞선다고 볼 수 있다. 공해도 걱정할 것 없고 영구성까지 갖추고 있어 일석이조의 경제적인 효과까지 톡톡히 보고 있다. 광양시도 1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문화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렇지 않고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일회용 이벤트적인 문화잔치에만 신경을 쓴다면 문화의 거목을 키워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통영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랜 전통을 현대적인 것과 접목해 제3의 문화산업을 창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옻칠과 나전칠기공예를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옻칠공예는 예술을 넘어 통영을 대표하는 문화의 꽃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됐다.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수천동안 맥을 이어 전래되어 온 신비의 채화칠기와 나전칠기는 뿌리 깊은 전통예술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려시대의 국보급 나전칠기는 민족예술로 승화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전 국민이 선호하는 민중예술로까지 발달했다.

문화는 ‘세월'을 먹고 자란다
“문화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유럽이 그처럼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화는 세월을 먹고 자생한다고 볼 수 있다." 광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화가 김선영 화백의 말이다. 그 중에 김성수 칠예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옻칠공예는 400년이라는 전통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 DNA를 김성수 관장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박물관은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지만 미술관은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미래를 창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성수 관장의 말이다. 이 미술관은 김성수 관장이 직접 사재를 털어 통영의 옻칠을 보존하고 확대 계승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예술적인 가치와 실용적인 가치를 함께 겸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관장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다양한 생활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소장하고픈 심미성을 갖추고 있는 예술품들이다. 또한 곳곳에 보존 된 예술가들의 생가와 높은 언덕 마을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 동피랑 길 등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문화공간 그 자체다. 그 외에도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한산도와 다양한 섬들은 굴뚝 없는 문화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인가’
취재를 끝내고 돌아서는 기자의 등뒤로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 이 통영의 바닷가에 나부끼는 소리가 들렸다.

가효자 광양여성작가회장과 통영칠예미술관 김성수관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벼랑에 자리한 마을, '동피랑'을 돌아보고 있는 관광객들 모습이 여유롭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동상

청마 유치환 시인 박물관 입구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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