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동 열 서양화가

70~80년대만 해도 시장에 가면 형형색색의 물감을 펼쳐놓고 호랑이, 나비, 모란 등 다채로운 그림을 쓱쓱 그려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한글 이름이나 한자를 이용하여 거기에 걸맞는 모양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아마 그 당시에는 각 가정마다 이런 그림들이 한 두 점씩은 걸려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름 없는 무명화가들이 호구지책으로 그린 그림이었지만 그게 바로 민화였던 셈이다. 물론 혁필화(붓글림)만이 민화는 아니지만 오늘날 예술의 한 장르로 독립되어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필자가 보기에는 그거야 말로 가장 한국적인 팝아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에 일찍이 민화에 대하여 체계적인 한 장르로써 연구되고 발전시켜 미술사적으로 발표되었다면 미국의 팝아트의 창시자며 대가인 리히텐 슈타인이나 앤디워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더러 있다. 더구나 그 시대 민화를 그렸던 무명화가들이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세상사 대부분이 그렇지만 한 나라의 미술 발전도 국력과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화는 장식하는 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데 이를 화목(畵目)별로 분류하면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어해도(魚蟹圖),작호도(鵲虎圖),십장생도(十長生圖),산수도(山水圖),풍속도(風俗圖),고사도(故事圖),문자도(文字圖),책가도(冊架圖),무속도(巫俗圖) 등이 있다.

화조영모도는 민화 가운데 종목이 가장 많으며 꽃과 함께 의좋게 노니는 한 쌍의 새를 소재로 주로 사용한다. 화조도는 매화·동백·진달래·개나리·오동·솔·버드나무·메꽃·해당화 등과 봉황·원앙·공작·학·제비·참새·까치 등을 물이나 바위와 함께 그렸으며 주로 병풍으로 재구성해 신혼부부의 신방 또는 안방 장식용으로 즐겨 쓰였다. 어해도는 물속에 사는 붕어·메기·잉어·복어·송사리·거북·게·새우·조개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꽃과 해초를 곁들여 그린 경우가 많다. 주로 젊은 부부의 방 장식으로 쓰였으며, 잉어를 아침 해와 함께 그리는 경우 출세를 기원한다든지 경축일의 축하용으로 사용되었다.

작호도는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밑에서 이를 바라보며 웃는 듯이 앉아 있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수호신적인 역할을 했던 사신도(四神圖)의 한 변형으로 보이며, 까치의 경우 주작(朱雀)의 변용으로 풀이된다. 작호도는 잡귀의 침범이나 액을 막는 일종의 벽사용(邪用)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십장생도는 장수(長壽)의 상징인 거북·소나무·달·해·사슴·학·돌·물·구름·불로초를 한 화면에 배치하여 장식적으로 처리한 그림이다. 세화(歲畵)로 그려지기도 하고, 회갑잔치를 장식하는 수연병(壽筵屛)으로 쓰이기도 했다.

산수도는 금강산이나 관동팔경(關東八景)과 같은 산천을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實景山水)와 중국식(中國式) 산수로 나눌 수 있다. 병풍으로 꾸며져 객실이나 사랑방용으로 많이 쓰였으며 풍속도는 농사짓고 베짜는 모습을 그린 경직도(耕織圖)와, 태어나서 출세하고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平生圖),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수렵도(狩獵圖), 일상생활의 장면이라든가 사철의 풍속을 그린 세시풍속도등이 전해오고 있다. 고사도는 고사와 민화(民話), 소설 등의 내용을 간추려 표현한 그림으로, 교화용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이야기를 담은 열락도(悅樂圖)를 비롯하여 삼고초려도·상산사호도(商山四皓圖), 그리고 삼국지·구운몽·토끼와 거북 이야기 그림 등이 있다. 문자도는 글자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고사 등의 내용을 자획속에 그려 넣어 서체를 구성하는 그림으로, 수(壽) 또는 복(福)자를 도식화한 수복도와 효·제(悌)·충·신·예·의·염(廉)·치(恥)를 도식화한 효제도(孝悌圖)는 교화용으로 제작되어 주로 어린이방을 장식하였으며, 이러한 문자도는 혁필화(革筆畵)라고 하는 서체 위주의 비백도(飛白圖)로 변용되기도 했다. 그 외도 책가도 무속도가 전래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예술을 일상생활에 접목하며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록 오늘날 사람들이 옛 사람보다 문명을 발달을 시켰는지 모르겠으나 인간이 지니고 살아가는 삶의 풍요로움을 놓고 볼 때는 옛 사람보다 훨씬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민화의 아름다움과 위대성에 스스로 탄복을 하게 된다.

데스크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