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鳥獸哀鳴海嶽嚬)/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槿花世界已沈淪)/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秋燈掩卷懷千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 1910년 한일병탄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침탈되자 그해 9월10일 통분해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선생이 남긴 7언절구 절명시(絶命詩) 4수 중 제3수다.

한말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역사가이며 애국지사인 매천 황현 선생의 순국 100주년이 1년 앞으로 다가 왔다. 매천 황현 선생은 세종 때의 명정승 황희 선생과 임진왜란 때 이름난 장수 황진의 10대 후손으로 조선왕조 최후의 대표적 시인이자 문장가이며,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때를 맞아 선비로서의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애국지사다.
황현 선생은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의 아늑한 마을에서 부친 황시묵과 풍천 노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1855년 12월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황현 선생은 이건창, 김택영 등과 교유하면서 문재를 떨쳐 ‘구한말 삼재(三才)’ 중 한 명으로 불리며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29세 때 과거에 응시해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시골의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2등으로 밀려나자 청운의 뜻을 버리고 전남 구례에 낙향해 칩거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34세 때 부모의 간절한 요구에 못 이겨 다시 과거에 응시, 생원시에 장원해 진사의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넘쳐나고 탐관오리들이 활개 치는 현실에 절망해 다시 구례 월곡마을에 은거하며. 이후 학문과 저술, 강학에 전념했지만 기울어가는 나라 걱정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황현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을 당하자 ‘문변3수(聞變三首)’와 ‘오애시(五哀詩)’라는 시를 지어 울분에 찬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황현 선생은 시인인 동시에 매서운 필봉을 휘두른 역사가이기도 했다. 자결하기 직전까지 집필했던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지식인의 관점에서 비판적 서술한 역사서로 최근세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황현 선생은 망국의 근본 원인이 내부의 부패와 무능에 있다고 봤으며, 매천야록에는 세도정권의 부패상，철종·순종·고종의 무능,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반목, 친일파의 매국 행적 등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밖에도 오하기문(梧下記聞), 동비기략초고(東匪記略草藁) 등의 역사서를 저술해 매천 선생의 저술을 보지 않고는 우리의 근대사를 연구할 수 없을 정도로 보배와 같은 사료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광양시는 황현 선생의 의혼을 기리고자 지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25억원의 사업비로 사당과 생가정비사업을 실시해 오고 있으며,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각종 매천 학술대회 및 역사기행, KBS 역사스페셜 제작 방영, 전국 역사교사모임 답사 등 추모행사가 계획돼 있어 매천 황현 선생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될 전망이다.

이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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