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임 순 까치문학 회장. 수필가

자꾸만 얼굴이 어른거린다. 눈을 감으면 눈앞에 있고 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며 방긋 웃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한다.
태어난 지 닷새 된 손자가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녀석은 강보에 쌓인 채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거나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신생아 보호실에 있는 녀석은 하루에 두 번밖에 만날 수 없다. 그런데도 녀석은 내 마음을 혼자 독차지 한다.

녀석을 만나면 그저 바라 볼 뿐이다. 그래도 그 만남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공연히 가슴이 설레고 오늘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짝사랑하는 기분이 이럴까? 평소에는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 안타까웠는데 둘째 손자가 태어난 후로는 시계 바늘이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조급한 마음에 미리 대기실로 간다. 아주머니 한 분이 서성거리고 있다 나를 보더니 “집이도 손주 보러 왔소”한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니 “왜 이리 주책인가 모르것소. 핏덩이가 뭐 볼 것이 있다고 이리 보고 잡다 말이오”하며 앞니를 훤히 드러낸다. 아주머니는 내 곁으로 앉으며 “아, 글쎄 말이요 눈은 왕방울이고 코가 오뚝하고, 귀는 부처님 귀를 닮아 복스럽게 생긴 것이 보조개도 있다 말이요” 한다.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되었느냐고 물으니 삼 일째란다.

손자가 얼마나 예뻤으면 생면부지인 나에게 누에가 실을 뽑듯 자랑을 늘어놓는다. 나도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렇다고 달리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며느리는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어 급하게 나의 손길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병실에서도 시계를 자꾸 보았다. 시간이 잠을 자는지 참 더디 갔다.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주위가 뒤숭숭하다 싶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우왕좌왕 정신이 없다. 누군가 “왔다” 하는 말에 사람들이 목구멍으로 말을 넘긴다. 며느리와 아들의 이름이 써진 이름표를 대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가슴이 콩닥거린다.
욕심이라고는 없는 모습으로 웃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못한 아기가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본다. 핏줄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당기는 힘이 있을까. 잠시 눈을 감고 마음으로 빌고 또 빈다. 건강하게 순리대로 살아가라고. 그리고 가슴으로 안는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다 내 가슴속에 있는 것 같다. 그래 이 보다 더 귀하고 값진 보물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귀한 보물을 얻었으니 아이의 몫까지 봉사하면서 살아가리라. 손자가 태어난 기쁨만큼이나 사랑의 주머니도 키워나가야 한다.

간호사한테 안겨 가는 녀석의 눈망울이 빛난다. 어느새 초롱초롱한 별로 내 마음에 자리한다. 이런 당김이 핏줄인가 보다.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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