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하늘씨앗교회목사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잠기고 머리가 멍한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매일하던 습관처럼 노고단을 보려고 동쪽을 향해 섰지만, 안개마저 가려 그 고운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요즘 나의 일락(一樂)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수시로 변하는 지리산을 보는 것인데, 영 틀려 먹었다. 무슨 놈의 안개가 이리도 짙게 끼었는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다.

마치 우리내 삶이 그런 것처럼. 이럴 때는 집에서 쉬는 게 마땅하겠지만, 여기저기 얽힌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내 몸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대인의 실존적인 모습이다.

자연이 주는 황홀감
지난달에는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灣)을 돌았다. 순천 만(灣) 갈대밭은 갈 때마다 색다른 감동을 안겨 준다. 자연의 혜택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정부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실로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자연이란 문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순천만 갈대밭을 둘러 보는 사람마다 자연의 황홀감 앞에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어느 생태학자가 말하기를 ‘상처입은 자연이 회복되는 가장 빠른 길은 인간이 사라져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인간들이 자연에게 한 행동을 보면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자연에게 군림한 인간의 오만을 반성할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먹어서 죽는 현대인
성인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원인은 육식위주의 식탁을 즐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육식을 하는 인구가 늘어나면 날수록 자연은 그만큼 황폐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기양을 늘리기 위해 숲을 없애고 목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해 동안 사라지는 숲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숲이 하루게 다르게 벌목되고 있는 모습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명심보감에 食淡精神爽(식담정신상)이라는 말이 있다. 담백하게 음식을 먹으면 정신이 상쾌해 진다는 뜻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식탁은 온통 인스턴트와 육식 위주로 돼 가고 있다. 한마디로 먹어서 죽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즐기는 육식은 병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덩달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
성경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소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표현이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고나면 결국 흙이라는 자연 원소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원히 살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죽음이라는 용어 조차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이 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반드시 죽게끔 운명지어져 있다는 말이다. 뻗댄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죽음은 삶에 대한 바른 가치 판단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본인이 죽는다는 확실한 인식을 가질 때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됨은 물론,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자기 욕망에 따라 자연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이 지구별이라고 하는 곳에 잠시 소풍 온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그대로 물러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금 그렇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당신의 인생 소풍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자연은 공유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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