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시를 읽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도가 시가 되고 시를 먹고 사는구나” 라는 생각이다. 고운 마음을 가져야 고운 단어들이 튀어 나오는 법인데 그녀를 보면 어쩌면 그렇게 한 올 한 올 명주실 같은 고운 말로 세상을 바라볼까 싶다.

매화마을을 방문하고 싶다는 수녀님의 전화를 받고 시인과 수녀, 두 가지 이름으로 사는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친분이 있던 관계로 지난달 25일 매화마을을 방문하던 날, 매화에 감탄하고 섬진강에 취하며 감격해 하던 이해인 수녀를 단독으로 취재했다. 그녀의 맑고 고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8번째 시집 ‘작은 기쁨’ 펴내
이해인(63) 수녀가 새 시집 ‘작은 기쁨’을 출간했다. 6년 만에 새로 나온 시집이다. “제가 쓰는 시가 조그만 위로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40년 수녀 생활에서 얻은 결론이랄까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외로운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심부름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아침 눈뜨는 것도, 숨쉬는 것도 기쁨이요, 감동이요, 힘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숨 쉬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기도 시간에 기억할 사람이 많은 것을, 식탁에서 하루 세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은혜를 기뻐한다. 또한 누구를 만나면 어떤 숨은 뜻을 배울까 기뻐한다.

“기쁨 찾는 일로 매일을 살다 보면 사소한 것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시집은 그래서 언제나 기쁨의 노래로 충만하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이해인 수녀의 언어는 여전히 맑고 고운 꽃말이 흥건하며 그 꽃과 잎을 떠받치는 수식어는 ‘작은’이다. 이번에 출간 된 103편의 신작 시 중 맨 앞에 놓인 시의 제목도 ‘작은 소망’이다.
등단 38년째인 시인은 “내가 걷는 삶의 길에서 앞으로도 작은 기쁨들을 많이 만들며 살고 싶다. 독자들의 마음에 작은 기쁨，작은 위로로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엄마를 보낸 자리에 시가 쏟아져
“엄마를 보내고 갑자기 시가 쏟아졌어요. 기도처럼 쏟아져 나왔지요. 이번 시집에 실린 103편은 모두 작년에 어머니를 보내고 난 뒤에 쓴 시예요”
삶이 힘들고 하루가 버거울 때, 우리에겐 늘 이해인 수녀의 아름다운 시가 있었다. 미국 대학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부끄러운 슬픔 속에/우리는 지금/어떻게 울어야 하겠습니까/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라고 애도의 시를 읊었다.

우리에게 이해인 수녀는 늘 그렇게 사랑의 시인이었다.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지친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 안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녀도 자식이었고, 딸이었다. 수녀는 지난해 9월 어머니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애끓는 이별 시를 썼다. 이해인 수녀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는 아마도 처음인 듯싶다. “요즘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넓어졌음에 감사하고 삶을 하나의 예술로 체험하고 순간순간 기뻐한다”는 이해인 수녀. 그의 시는 세상사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욕망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읽고 싶어지는 시다.

첫 서원을 한지 40년 되는 해
올해는 그녀가 첫 서원(誓願)을 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녀는 1964년 수도원에 입회했고 수련기 4년을 거친 뒤 1968년 ‘청빈, 정결, 순명의 삶을 살겠다’는 공적인 약속(서원)을 했다. “초등학생 때 언니가 수녀원에 들어갔어요. 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수도생활에 입문하게 됐지요”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시인의 꿈은 입회해서도 이어져 그녀는 수도원에서 시를 썼으며 1976년 종신서원과 더불어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나왔다. 이후 8권의 시집, 7권의 에세이집, 8권의 번역서 모두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따라서 이해인 수녀는 수녀보다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에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e-메일과 편지가 오는데 답장을 보낼 때는 꼭 손으로 써서 보낸다고 한다. 그는 “한 통의 편지처럼 살고 싶다”고도 말했다. 매화마을로 향하는 그날도 편지함에 꽂혀 있는 편지를 들고 왔노라며 밥 퍼주는 사람들에게서 온 편지를 낭송 했다. “이 단어가 너무 재밌지 않나요? 밥알 들어 올리는 사람들!”

언어는 인격, 어지러운 세상 말부터 정화해야
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맑게 사는 방법을 물었다. 지체없이 “언어생활부터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 돌아버리겠다, 골 때린다 등의 얘기만 안 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자빠지면 못 일어나는 거 아니냐. 충동적인 발언으로 인품이 많이 깎이는 사례라고 부연했다.

이해인 수녀가 하는 강의활동의 주요 테마가 바로 언어 정화이기도 하다. 회사, 종교단체, 학교 등에서 강의가 들어오면 “언어는 습관이며 뇌에 저장되기 때문에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곧 인격과 직결된다. 따라서 나만의 언어습관을 ‘즐겨찾기’에 저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생각 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냉정하고 무자비한 말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말을 조심해서 뱉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를 한다.

수만 통이 넘는 편지가 재산
작년에 이해인 수녀의 글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주웠다는 조가비, 인근 산에서 주워 온 솔방울, 방문자들과 마더 테레사수녀와 찍은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좁은 글방 옆에 있는 편지창고로 안내해 편지에 얽힌 각각의 사연들을 소개했다.

“자살 직전에 보내온 편지, 방황했던 20대가 지금은 20대의 아들을 둔 부모가 되어 고맙다고 온 편지들이예요. 저는 지금도 편지 받고 답장 보내는 일을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특히 어려운 이들에게는 편지가 힘이고 사랑이잖아요”눈짐작으로 수만 통이 넘어 보이는 편지가 재산이라고 했다.
“누가 내 삶을 한마디로 뭐였느냐고 물으면 ‘인생의 러브레터였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매화마을과 섬진강에 반했어요”
“이번에 매화 마을은 사실 처음 방문했어요. 매스컴에서 매화마을이 소개될 때마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져서 기뻐요. 강원도 산골에 사시는 법정 스님은 매화가 필 때 꼭 한번은 다녀간다던데 가까운 부산에 살면서도 이제야 흐드러진 매화 꽃밭에 앉아 보네요”
광양은 빛 광(光)자, 볕 양(陽)자를 써 햇볕이 많고 따뜻한 고장이라는 설명에 “광양은 그냥 들으면 정겹지 않은 이름인데 뜻풀이를 하니 의미가 깊고 따뜻한 느낌이네요”라며 사는 곳을 자랑하는 솜씨가 광양 사람답다는 이야기를 건네 한바탕 웃음이 날린다.

시인 수녀는 매화마을에서 많은 팬들을 만났다.
“수녀님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여기서 뵙다니요”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사진 촬영은 물론 사인을 해주고 일일이 손을 잡으며 편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시인, 그녀는 천상의 노래를 부르는 천사였다.

그녀는 “시간이 없어 많이 망설이다가 나섰는데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 왔더라면 후회할 뻔 했네요. 매스컴에서 매화마을 전경을 자주 접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울 곳인 줄은 몰랐어요”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수녀원 앞뜰에 심어진 매화 한 그루를 보고 ‘매화 앞에서’라는 시를 썼다는 그녀가 이번 방문으로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보고 다음 시집에서는 매화 향기 그윽한 시를 줄줄이 엮어내는 것이 아닌지 기대해본다.

돌아오는 길, ‘작은 위로’와 ‘작은 기쁨’ 두 권의 책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꽃과 별을 붙이고 직접 사인을 한 고운 마음의 향기가 전해졌다. 이해인 수녀는 그동안 많은 시집을 출간했다. 하지만 모두 수도원으로 귀속 된다. 정결, 청빈, 순명의 덕목을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늘 빈손인 그는 넉넉한 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의 양식’이라며 누구에게나 책을 사서 선물한다.

6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꽃띠인 그녀는 “오늘 저녁은 매화꽃 꿈을 꿀 것만 같아요" 라며 저녁 기도 시간이 바쁘다고 서둘러 부산으로 향했다. 종일을 그녀와 함께 하며 ‘맑은 영혼을 닮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또 만나기로 기도해요”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차창 밖으로 던진 인사가 내내 귓가에 맴돈다.

조경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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