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리산 자락의 한 마을에 일요일이면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어김없이 교회를 나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바로 자그마한 키에 온화한 얼굴을 하신 김수현 할머니다. 지체장애 4급인 할머니는 6ㆍ25 한국전쟁의 화약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꽤 잘사는 집안에서 지금의 마을로 시집을 왔다. 할아버지하고 선도 안 보고 친정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에 따라 가난한 할아버지에게로 왔다고 한다.

시집을 오면서 아가씨 때 산과 물과 풀, 새 등을 내용으로 틈틈이 자수를 떠서 만들어 놓은 상보며, 햇대보며, 베개 옷이며, 한복 덮개며 온갖 것들을 한 보따리 가지고 왔다는 할머니는 평생 재봉틀을 옆에 끼고 사셨다. 할머니의 넷째인 딸아이가 한 살이었을 적에 목수였던 할아버지가 사람을 사서 오두막처럼 허술한 집을 고치던 중 그만 인부의 실수로 집이 무너져 내렸고, 다른 사람들은 다 뛰쳐나왔지만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던 할머니는 …….

당시 할아버지는 그만 포기하라고 권하는 동네 사람들을 뒤로하고 양쪽 다리가 으스러진 채 피투성이가 된 할머니를 소달구지에 싣고 순천의 한 병원으로 가 여섯 시간이라는 긴 수술 끝에 살아 있는 할머니를 보셨다고 했다. 이것이 할머니가 지체장애를 갖게 된 사연이다. 그 후 할머니는 딸아이를 하나 더 두셨고, 장애가 가져다주는 숱한 아픔 속에서도 고작 논 두마지기와 목수라는 할아버지의 부업으로 막내 대학까지 오남매를 뒷바라지하셨다.

이제 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지 어느덧 10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 모자를 찾으셔서 묘지 옆에 태워드렸다는 할머니는, 운동화는 찾지 않았다며 두 해가 넘도록 토방 위에다가 할아버지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두셨다. 지금은 그 토방 위에 할아버지 운동화대신 아들의 운동화가 할머니의 신발과 나란히 놓여 있는데 ……, 단 한 번도 안 거르고 매주 일요일마다 불편하신 걸음으로 교회를 나가시는 김수현 할머니가 바로 나의 어머니이시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늘 그렇지만 유난히도 이날에는 ‘잘 산다 못 산다 할 게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나니, 금년에 고만고만한 자식들이 있어 죽지 못해 사노메라.’ 하는 어느 시인의 시와 함께 파란의 세월을 걸어오신 울 엄니 생각에 가슴이 저민다. 흔히 장애는 실의에 빠지지 않고 열등감 대신 용기를 갖고 생활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극복에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뼈를 깎는 고통과 눈물과 인내가 뒤따라야 한다.

올해로 서른여섯 번째인 장애인의 날을 맞아 내일은 우리 장애인들이 더욱 환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장애를 가지신 분과 장애인의 가족 분들을 위해 부족하나마 정성을 담아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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