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의 관계는 잉크와 펜과 같다. 그만큼 독서는 글을 쓰는 데 있어 중요하다. 독서의 가치가 어디 글뿐일까. 독서는 사고의 폭을 넓게 하고 깊이를 깊게 한다. 뿐만 아니라 체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여 상상력 또한 높여준다. 그래서 책이 지닌 매장량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지혜의 보고(寶庫)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갈수록 책과 멀어진다. 영화와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등이 넘쳐나는 유튜브와 OTT, 신나고 재미있는 게임 속에 사람들은 매몰되어 자신의 사고와 감정이 녹슬어가는 것을 방관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세상이 심심하지 않고 외로움 따위는 느낄 시간이 없다. 이렇게 혼자서 즐기는 것이 늘어가니 타인과의 교감의 창(窓)이 닫히게 된다. 감옥처럼 철저하게 고립된 닫힌 공간이 세계의 전부라 착각한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정신의 폐경기를 지나 영영 사유의 불임(不姙)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간답시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인근 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침 휴일이어서인지 열람실 곳곳은 빈 자리가 꽤 많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 전등 스위치를 누르니 환한 빛이 쏟아진다. 책장에서 가져온 책을 앞에 놓으니 잠시 잊고 지냈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벚꽃과 목련꽃이 아름다웠던 곳, 그해 봄에도 나는 도서관 구석에 앉아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랑, 그리고 관심이 많았던 시와 음악들. 청춘은 외롭고 쓸쓸했지만 그것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일이 독서였다.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미래를 꿈꾸었으니 그나마 행복했다. 수많은 책과 함께했던 대학을 졸업하고 험난한 세상에 나오면서 무엇에 치였는지 독서 시간이 줄면서 미래에 대한 꿈도 점점 줄어들고 말았다. 모처럼 찾아온 도서관에 앉아 코끝으로 맡는 책의 향기가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책상을 환하게 비추던 스탠드를 끄면서 그 자리에 다시 추억을 묻었다. 

내친김에 저녁 무렵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고인이 되신 오주석 선생님의 ‘독화(讀畵)’ 수필집이다. 유고집인데 설렌다. 정가 15,000원. 10% 할인하여 13,500원. 그 값으로 옛날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해보련다. 
최고의 가이드를 모시고 떠나는 참으로 멋진 조선시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가슴 뛰는 여행 말이다. 책은 만남이면서 여행이다. 지식인과의 만남은 그저 지인(知人) 하나 더 두는 정도가 아니다. 깊이가 금세 드러날 얕은 지식이 아닌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혜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여행으로 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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