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백운산 억불봉양관수 소설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3.03.15 10:47
  • 댓글 0

 

광양시 옥룡면 동동마을에 도착했다. 백운산 산행을 위해서다. 보약 중 보약으로 꼽는 고로쇠 물 내음이 짙게 풍긴다. 관절과 장에, 눈에도 좋단다. 먹고 나 효험을 보았다고 붙이는 대로 약효를 인정받는 그 물이다. 하지만 고로쇠나무에서 물을 얻어먹고 무엇을 돌려줄지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백운'자가 붙은 산과 봉은 많다. 어떤 책에는 무려 20개가 넘는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백운산·봉들 중 섬진강을 끼고 도는 전남 광양 땅 백운산이 으뜸이리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지리산의 위용에 결코 뒤짐이 없는 장엄함 때문이다. 전남에서는 반야봉과 노고단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마을에서 1시간 40분쯤 오르니 옹달샘을 100m 정도 떨어진 억새풀 틈에 숨겨 둔 삼거리에 도착한다. 바로 가면 백운산 정상(1,217m)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다음으로 미루고 노랭이봉에서 본 억불봉(1,000m) 쪽으로 접어든다. 억불봉은 작은 봉, 중간 봉, 정상으로 나뉜다. 사람 젖가슴은 두 봉이지만 백운산은 세 봉이 다정하다.

바위산 오르는데 산 밑으로 구를 듯해 가슴 조인다. 철 계단을 오르내리고 하얀 동아줄을 놓치지 않으려 바둥거린다. 두 번째로 큰 중간 봉우리가 마지막 정상인 줄 알고 힘들여 올랐을 때 또 다른 돌산 하나가 떡 버티고 있다. 
두 번째 봉우리 밑에서는 억불 정상이 보이지 않아 높은 저 위가 끝이려니 어림잡은 탓이다. 질리고 놀라 맥이 풀려도 마지막 힘을 내어 손에 잡힐 듯한 억불 정상을 향해 또 발을 내딛는다.

억불 끝머리는 바위가 아니고 부드러운 흙 마당이 펼쳐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바위투성인데 고운 흙을 밟다니. 여기저기 무리 지어 더러는 가슴까지 닿는 철쭉나무들도 새 이파리를 자랑한다. 그 사이로 광양 세풍저수지와 섬진강 건너 하동읍이 눈에 들어온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이 무슨 말이든 한마디쯤 할 듯한 데 묵언이다. 표현하기 어려운 빛을 품어낼 뿐 흐르기조차 멈춘 듯하다. 살갗 스치는 봄바람엔 몸 푸는 땅의 땀이 담기고 허공을 나는 까마귀 울음에 하품이 실린다.

몸과 마음을 닦아낼 산과 바람. 함께 어우러진 풀, 나무, 숲, 샘. 숨어버린 짐승들. 가장 중요한 사람들. 산길을 가득 채운 등산객들이 웃고 떠들며 걷는다. 자연에 안겨 즐거워한다. 그 기쁨의 진정성에 나는 의문을 던져본다. 산에 안기면 나도 산인데, 나의 만족이 아닌 산의 채움이어라. 그 행복이 억불 바위처럼 이어지길 바란다.

점심 먹으며 쉬기도 할 겸, 삼거리 옆 억새 숲에 숨은 샘터를 찾는다. 숲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가을이면 억새가 우거지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싼 흔적들이 지금은 빛깔마저 바랜 채 흙으로 스며드는 상흔으로 다가온다. 그 자취에 지난가을의 영화가 짙게 배었다. 

이러한 백운산과 광양은 특별하다. 도심 곁에 해발 1,217m 명산이 있다는 게 흔치 않은 탓이리라. 오르내리는 부드러운 흙길. 억불봉 기암. 맑은 샘. 지난가을의 추억에 젖어 드는 억새 숲. 다 나의 벗이다. 그런데 나는 산을 찾을 때마다 부딪히는 난제가 있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산행을 하려 해도 늘 혼자였다. 누가 안 따라오지? 또다시 수수께끼에 빠져든다. 이런 나에게 봄 나무들이 자신들의 몽상을 따라 한다며 비웃는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