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정병욱은 그해 5월 조선일보 학생 투고 란에 ‘뻐꾸기’라는 제목의 산문(散文)한 편을 실었다. ‘뻐꾸기’는 두견과의 새로 그 특별한 울음소리 때문에 시(詩)·서(書)·화(畵)의 소재로 많이 인용되어 왔으며 이름조차 자규, 두견새, 불여귀, 망제혼, 귀촉도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뻐꾸기는 사람을 이롭게 하면서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부화시키는 탁란(托卵)성의 얌체족 새로 알려져 있다.
필자도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밤새워 울어대는 뻐꾸기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자랐으며 무슨 한(恨)이 서려 있기에 저렇게 슬피 우는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뻐꾸기라는 산문을 쓴 정병욱! 구슬프게 우는 뻐꾸기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조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봄철 춘궁기에 못자리를 빨리 서두르라는 뜻으로 ‘아버지! 못자리! 뻐국! 뻐국!....아버지! 못자리! 뻐국! 뻐국!’....‘ 반복해서 지저귀는 저 애절한 울음소리가 지금 내 귀에는 피눈물 나는 하소연, 간장을 되씹으며 들려오고 있다. 종(鐘)아! 너도 귀를 기울여 듣거라, 간장이 녹아 없어지더라도 저 이야기를 안듣고 견디겠니? 하고서 뻐꾸기가 있는 힘을 다해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는 절규(절규)를 소개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기고문을 읽은 윤동주가 곧바로 정병욱을 찾아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을 토로하며 의기투합(意氣投合)하는 동지가 되었다. 당시 윤동주의 나이는 24살, 정병욱은 19살... 두 사람 모두 ‘열혈청년’들이었다. 그 날 이후, 2년여 동안 같은 하숙집에서 침식을 같이 하면서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위한 수 많은 생각들을 쏟아가면서 대화를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삶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분신처럼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정병욱은 “내가 평생해 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동주의 유고시(遺稿詩)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릴 수 있게 한 일”이라고 했다. 1942년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미처 발간하지 못한 친필 원고 시(詩)19수를 정병욱에게 맡겨 놓은 것을 1944년 본인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 박 씨에게 맡기고 어머니 또한 지혜로운 분이어서 마루 밑에 빈 독을 묻고 딸의 혼수감과 같이 보관한 것이 등록문화재 341호(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 가옥, 2007년 7월 3일)가 되었다.

정병욱은 윤동주에 대한 그리움이 지극한 나머지 자신의 여동생과 윤동주의 남동생을 부부의 인연까지 맺게 해주었다. 또한 자신의 아호 백영(白影)도 윤동주의 시(詩) 제목을 인용했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윤동주는 먼저 릿교(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도시샤(同知社)대학 영문과로 옮겼다. 학업 중 귀향하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3.7)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에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는 1990년 8월 15일에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정병욱의 삶과 업적
정병욱은 아버지 남파 정남섭 공과 어머니 박아지 여사의 4남 1녀중 장남으로 1922년 4월 22일 경남 남해 설천면 문항리에서 태어났다. 교직에 계시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다가 1934년 3월 하동공립보통학교(6년제)를 졸업했다. 같은 해 3월, 동래고보에 진학, 5년간 수학한 후 1940년 4월 연희전문에 입학, 이 곳에서 윤동주와 만났다. 아버지 남파 공이 교직을 떠나 1934년에 광양 진월 망덕에서 양조업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광양으로 이거(移居)했다.

1944년 3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학병으로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광복으로 풀려났으며, 1946년 4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학, 1948년 8월 졸업했다. 졸업 후 부산대, 연세대, 서울대 교수를 거치면서 국어국문학 발전에 금자탑을 세웠다.

주요 학문적 업적을 살펴보면,
1948년 1월 30일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을 발행하여 불멸의 민족시인 윤동주를 선양함.
1952년 12월 국어국문학회 창립회 회장 역임 (1959년~1960년)
1966년 10월 시조문학사전 간행
1974년 3월 판소리국악학회 창립회장
1977년 3월 한국고전시가론 간행
1978년 3월 외솔상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상) 수상
1979년 5월 한국고전의 재인식 간행
1980년 3월 3.1문화상(학술부문)수상
1980년 8월 한국의 판소리 집문당
1981년 8월 학술원 정회원
1982년 10월 12일 숙환으로 별세 (향년 61세)

▶정병욱 교수를 찬양하는 글
시인 정한모 선생(전 서울대 교수, 문예진흥원장, 백영 정병욱 선생의 서울대 1년 후배)은 백영 정병욱 교수의 회갑기념 논총에 다음과 같은 시(詩) 한편을 올렸다. ‘돌아 온 하늘 날으는 학(鶴)의 모습으로’

-백영 정병욱 학형 회갑의 날에-
오늘은 북채라도 잡고 신명나는 몇 마당
어깨 춤으로 오르내리며 장단이나 고르시오
아니면 오늘은 지리산(智異山)남쪽 줄기 높은 봉우리
해묵은 소나무 가지 위에 훤칠한 다리 긴 목으로 서서
고샅마다 글 읽는 소리 그치지 않고
당신의 고고(孤孤)의 울음소리 들리는
남해(南海)섬 문항리(文巷里)
노량해협(露梁海峽)건너서 철 들며 자라온
하동(河東)들 화개(花開)장터 쌍계사(雙溪寺)
섬진강(蟾津江)흘러드는 광양만(光陽彎)
멀리 그리움으로 굽어보는 검은 점 새하얀 학(鶴)의 모습으로

이윽고 가지들 차고 하늘로 솟아올라
두 날개 활짝 펴 하늘에 맡기고
돌아 온 하늘 나는 학(鶴)의 모습으로
두 활개 훨훨 춤이라도 추시오
견디며 넘어 온 힘겨웠던 세월의 자욱
너울 너울 춤으로 지우시오
쌓아 온 보람 하나하나 헤아리며
너울 너울 춤으로 누리시오
저기 흰 구름바다 위
높이 솟은 당신의 성(城)이 눈부십니다.
흩어져 묻혀있던 겨레의 얼이 담긴
소중한 주옥(珠玉)들
찾아내어 고르고 갈고 닦아
그것들로 쌓아올린
당신의 성(城)이 우람합니다
빛나는 당신의 성곽(城廓)안팎에서
당신으로 하여 빛을 본 노래들이
오늘 하나의 소리로 화음(和音)하며
당신을 감돌며 당신을 기리며
하늘로 누리로 울려 퍼집니다

자랑스러운 성주(城主)여!
오늘은 북채라도 잡고 신명나는 몇마당
어깨춤으로 오르내리며
장단이나 고르시오

아니면 오늘
돌아 온 하늘을 나는 학(鶴)의 모습으로
쌓아 온 보람 하나하나 헤아리며
너울너울 춤으로 누리시오

정병욱 교수의 회갑 논문집에 실린 정한모 교수의 헌시에는 정병욱의 성장환경을 설명하고 일생동안 학(鶴)차럼 고고하게 살아왔으며 일제하의 시련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우리민족의 정통성을 발굴하고 보전하기 위해 가사문학을 정립하고 전통음악인 판소리 국악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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