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수요명화산책
백은옥 화가의 작가노트 - 13화려했던 축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 광장처럼 쓸쓸한 11월의 들판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11.16 11:09
  • 댓글 0

 

11월의 잔상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을 것 같은 작은 벌레와 잠자리가 혹시 있는지 ⋯

희미한 향기만 남긴 채 스러져가는 들국화의 꽃잎이 11월의  차가운 대지와  입맞춤하고 서리 맞은 가을 장미의 붉은 색은 더욱 처연하다. 커피색을 닮은 낙엽들은 발 앞 저만치 굴러가며 안녕이라 인사한다. 11월을 눈에 담는 나의 모든 시선은 아쉽고 애잔하여 점점 더 오래 한곳에 머무른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낸 너의 용기에 감탄했고, 화사하고 향기로운 너를 만났으며 무성하여 뜨거운 여름의 그늘과  열매를  맺어 입안의 풍미를 가득 안겼던 너를 사랑했고 기억하기에 겨우내 너의 잔상을 가슴에 남겨 두고 싶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축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 광장처럼 쓸쓸한 11월의 들판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을 것 같은 작은 벌레와 잠자리가 혹시 있는지.... 커피향기가 나는지 말라가는 낙엽을 주워 깊게 들여 마신다. 계절에 따라 커피를 머금은 입안의 잔향과 분위기가 같은 원두의 커피를 마신다 해도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것에 계절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한 적이 많다.

보통 계절에 따라 커피 원두를 바꾸어 주긴 하지만   아주 까다롭게 고르진 않는다. 원두봉투에 적어 진 테이쓰싱노트 [Tasting Note]를 참고하는데 봄엔 은은한 꽃내음, 과일의 산미, 홍차, 꿀의 바디감을 느낄 수 있는 에티오피아 시다모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의 비중이 많은 원두를 고르고 여름엔 산미가 더 높고 청량감 풋사과,  산딸기, 사탕수수가 적어진 테이스팅노트의 예가체프 비중을 늘린 원두를 선택한다.


가을과 겨울이 되면 말린 무화과, 캐러멜, 구운사과, 적포도주, 바닐라,  다크초콜릿의 묵직한 단맛과 바디감이 느껴지는 콜롬비아와 브라질, 과테말라 원두의 비중이 많은 것을 골라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만큼 묵직한 잔향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한다.  미련이 얼마나 남아 있었기에 11월마다 가슴앓이를 심하게 겪었던 난 아마 상실되어 진다는 것에 집중하고 아파했나 보다.  

청춘소설의 고전이라 일컫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 또는 “ 노르웨이의 숲”은 9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영향력과  젊은 세대의 분위기를  이루는 현상에 비중이 컸으며 20대는 아니지만  몇 번을 다시 읽을 만큼 나에게도 깊은 여운으로 자리매김했다. 80년대 민주화라는 격변을 치른 젊은이들이 거시적인 사회문제 보다는 상실의 시대 주인공들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가치를 찾으려는 전환점과 맞아 떨어져 신드롬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곁에 있던 사람의 상실이 남아있는 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미학적 담백함으로 차분하게 그려 나간 이 소설은,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건 자아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나 그 싸움에서 다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실되어가는 것에 대해 지독하게 아파했던 지난 11월의 그 모든 나날들, 난 모든 잎을 떨어뜨린 나무에서 만족스럽고 평안한 안식과 다시 싹트고 꽃을 피울거라는 약속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또한 밑동을 훤히 드러낸 그 적나라함에서 나온 당당함을 초라함으로 생각했다. 나 또한 나를 감싸고 있던 허울과 가식을 하나씩 떨어내며 본질에 한발씩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소멸되어 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서서히 마음의 준비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싶다.  

몇 남지 않는 나뭇잎을 보면서 오 헨리의 “ 마지막 잎새” 를 오랜만에 끄집어내어 회상하면 상실되어 가는 아쉬움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내어 주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싶은  11월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11월의 커피로 콜롬비아와 브라질 원두가 주류를 이루는 ‘단풍  블렌드’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메이플시럽, 대추, 피칸, 무화과의 테이쓰싱노트 [Tasting Note]의 풍미를 지닌 원두가 따뜻한 물과  공기를 만나 깨워나기 바라며 커피를 드립 한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