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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양관수 소설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11.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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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예초기를 돌리다 구렁이를 보았다. 놈은 살아야 한다는 듯 쏜살처럼 달아났다. 나는 뱀을 죽이지 않는다. 여타 생명체들도 인간에게 공격성을 들어내지 않으면 해치지 않는다. 나무나 풀도 함부로 안 꺾는다. 나는 석촌리 밭에 제초제를 치지 않기로 맘을 먹었다. 흙과 나무를 농약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다. 밭에는 비파나무를 심기로 했다. 나무 심을 두둑을 만들고 제초 매트를 덮었다. 골에는 매트를 깔지 않았다. 골에서 자란 풀들은 예초기로 베고자 했다. 잡초는 우후죽순이 아니라 비가 안 와도 지칠 줄 모르고 자란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농약을 하지 않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나는 비를 기다렸다. 비 오기 전날 1~2년생 어린 비파나무를 옮겨 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월 하순인데 비가 안 왔다. 밭은 200여 그루 어린 비파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3월에 들어섰다. 다들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가뭄이라 떠들었다. 


며칠 뒤 곧 비가 온다는 뉴스가 떴다. 비가 온다는 날 점심때였다. 나는 지인의 산으로 가 어린 비파를 50여 그루 깼다. 석촌리에 가니 오후 다섯 시쯤이었다. 비파를 제초 매트가 덮인 두둑에 심었다. 미처 다 심기도 전에 날이 흐려지더니 작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곧 빗줄기가 굵어졌다. 


다행히 가져온 비파를 모두 옮겨 심었다. 밤새 비가 쏟아졌다. 옮겨 심은 비파들이 파릇파릇했다. 이후 비가 오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밭으로 가 살폈다. 비파가 시들어갔다. 나는 집에서 2L 생수병에 물을 담아가 비파에 부어주었다. 가위로 비파의 이파리를 잘라 수분 증발을 최소화했다. 


그래도 비파들은 말라 갔다. 석촌리 지인께서 수돗물을 빌어주기도 했다. 골에서는 잡초들이 가뭄에 시달리지 않고 잘 컸다. 나는 골의 잡초들을 손으로 뽑았다. 그를 비웃듯 풀들은 물감처럼 퍼졌다. 머지않아 골을 다 점령했다. 나는 제초 매트를 깔면 풀이 근접하지 않을 줄 알았다. 풀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듯 매트로 파고들었다. 나는 예초기로 골의 풀들을 제거했다. 매트로 기어오른 풀들은 난감했다. 뜯기도 베기도 했다. 


하지만 베어버린 풀보다 다시 자라는 풀들의 속도가 더 빨랐다. 머지않아 풀들이 밭을 장악해버렸다. 나중에 비파나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비파 옆에 고춧대를 박아 표시했다. 그래도 예초기로 풀을 베다 비파까지 잘라버렸다. 그때마다 나는 잡초를 탓했다. 밭 옆길을 지나던 마을 사람 몇이 내 꼴을 보고 웃었다. 제초제를 칠 일이지 쓸데없는 고생 한다며 위로하는 웃음이었다. 7월이 되자 일주일에 한두 번 돌리는 예초기로 풀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풀들은 두더지 게임을 하듯 온 밭을 돌아다녔다.


가을이 짙어지자 풀들은 제풀에 지쳐 주춤거렸다. 그새 비파는 13그루로 줄었다. 가뭄에 마르고 풀을 베려는 예초기에 잘렸다. 내 소망을 잡초가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년에 나는 제초제를 치기로 맘먹었다. 구렁이도 사라지리라. 비파나무가 스스로 살아갈 때까지만 농약을 뿌리련다. 구렁이도 다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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