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답사는 지역사랑의 첫걸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진실의 위대한 힘을 스스로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어떠한 위선과 거짓도 도도히 흐르는 정의의 물길을 거역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준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남인재평생교육원’이 주최하고 ‘함께하는 남도학’이 주관하는 2022년 도민행복대학 남도학첫걸음 ‘남도의 정신과 역사, 광양에 담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광양史로 보는 한국史’의 저자인 이은철 선생이 책임을 맡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에 해설사 동료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은철 선생은 교직에 봉직하면서 광양지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저술하여 광양 시민들에게 역사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늘 강조 하었다. 그리고 지나친 애향심으로 지역 역사에 대한 객관성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한 조언을 해 주었다. 

<우산리 교촌 마을에서>

지난 10월 8일(토) 우리는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광양 백운산 의병을 주제로 답사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광양교육지원청 앞 ‘황병학의병장기념비’였다. 교육청이 소재한 이 마을 이름은 광양읍 우산리 교촌마을이다. 옛부터 향교가 있는 마을은 교동, 교촌마을로 불리었다. 이 마을에는 조광조와 함께 기묘명현으로 유명한 광양출신의 대유학자 신재 최산두선생을 기리는 봉양사가 있고 그 앞에 ‘신재 최산두선생 유허비’가 자리 잡고 있다. ‘황병학의병장기념비’ 앞에서 이은철 선생님의 광양 백운산 의병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듣고 자세한 내용은 두 분의 광양 의병장을 배출한 비촌마을에서 듣기로 하였다. 답사 버스는 우리를 싣고 두 번째 방문지인 진상면 백학공원과 정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버스안에서 열띤 토론을>

버스 안에서 이 선생의 진상면 지명 유래에 관한 이야기와 오늘 답사의 중심인물인 황순모, 황병학 의병장에 대한 참가자들의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여러분이 의견을 주셨는데 어느 학술대회에 참가한 것처럼 열띤 대화가 오고 갔다.
참가자 모두가 지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학구적인 분들이어서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어서 좋았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 한 장면 한 장면이 멋진 작품이었다. 황금빛 들녘, 청명한 하늘, 길가에 가지를 쭉 늘어뜨린 대봉감의 풍요로운 풍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백학루에서 바라보는 백운산 억불봉의 모습 또한 걸작이었다. 수어천의 쪽빛 물결 위에 솟구쳐 있는 억불봉의 모습은 마치 백운산이 가릉빈가(극락조)가 되어 중생을 위해 힘차게 도약하는 모습이었다. 흔히 지리산 청학동의 갑(甲)천하 길지에 비견하여 백운산 백학동을 주(主)천하 길지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남도의 대명당지(大明堂地)였다.
원래 지리산 청학동에는 도인(道人)이 살고 백운산 백학동에는 선인(仙人)이 산다고 한다. 도인과 신선이 가까운 곳에 벗하고 있으니 과히 지리산과 백운산은 도(道)와 선(仙)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천하의 길지(吉地)라 하겠다. 

<진상 비촌 마을로 이동을>

오전 10시 30분경 비촌(飛村) 마을에 도착했다. ‘날몰’이란 지명으로 불리었던 마을이다. 이곳에는 황순모 ? 황병학 의병장의 기념비가 있고 회산(檜山) 창원 황씨 제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 분 의병장께 목례를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두 분 의병장 중 한 분이 이모부의 아버지가 되는 관계인 필자로서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공훈문제에 대해 분명한 나의 소신을 가지고 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피 흘린 의병장들의 공훈의 높낮이를 따진다는 것은 그분들의 우국충정에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은 자명하다. 당숙과 조카 사이였던 황순모, 황병학 의병장 집안의 정의로운 가풍과 의기를 숭모하고 두 분의 빛나는 애국심을 후세에 계승하는 사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가야 할 것이다.
 
누가 더 잘 싸우고 더 전투에 참여했는가 하는 기록은 단지 참고할 사항이다. 두 의병장의 후손들은 서로를 존중하여 조카는 당숙을 당숙은 조카를 의지하며 적과 싸울 때마다 임무를 분담하여 의병장을 맡았듯이 그 고귀한 순국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두 분을 받들고 함께 선양해야 할 것이다. 이은철 선생님의 두 분 의병장의 활약에 대한 명료하고 요약된 강의를 잘 경청하였다.

<천하일미 '어치화적’>

즐거운 점심시간, 마침 오늘이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인데 우리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맛있는 닭 숯불구이를 먹었다. 백운산 4대 계곡 중 가장 운치가 있다는 어치계곡 깊숙한 곳에서 방목된 닭고기를 백운산 참숯으로 구워 먹는 맛은 그야말로 ‘천하일미 어치화적’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는 음식은 바로 백운산의 보약이 아닐까 싶었다. 솔향기를 머금은 가을바람이 우리를 이리저리 반갑게 어루만져 주어 참숯불 연기에 행복한 눈물도 함께 흘렸다.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멋진 오찬이었다.
맛점 이후 우리는 구시폭포와 오로대(午露臺)로 향했다. 숲속 데크길을 걸으며 예쁘게 가을 차림새를 준비하는 잎새들과 대화를 하며 우리 모두는 가슴 가득한 황홀함에 도취 되었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숲길은 속세에서 벗어나 구도의 길을 걷는 선승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구시폭포로 가는 길은 선(禪)의 길이었다. 

소와 말의 먹이통(구시, 쇠 죽통)처럼 생겼다고 구시폭포라 불리는 폭포는 세월의 변함에도 세속에 오염되지 않고 순결한 모습 그대로였다. 새하얀 물안개를 피우며 감로수가 되어 내려오는 폭포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인사를 드렸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백운산에 드리는 예의였다.
선녀탕의 맑은 물이 나무꾼의 이야기를 소근 거리고 산새들이 대신해 나무꾼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언제 보아도 시원하고 깨끗한 어치계곡, ‘어치’는 느린재, 느재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산등성이를 감아 돌며 느긋하게 늘어진 고갯길을 의미한다. 구시폭포는 높이가 15m이다. 한낮에도 물보라가 무지개를 만들어 주어 신비로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오로대에서 일정 마무리>

이번 답사의 마지막 일정인 오로대로 향했다. 어치계곡의 최상류의 오로대는 용소 위에 커다란 바위가 평평하게 넓은 마당처럼 펼쳐진 암반이다. 1924년 9월 고암(鼓岩) 황병중(黃炳中, 1871-1935)이 글을 짓고 봉강면 출신 완재 박현모가 이곳에서 단오절과 한로절에 풍류를 즐겼다고 오로대(午露臺)라고 이름하고 바위에 새겼다. 황병중은 오로대기(午露臺記)에 그 의미를 이렇게 기록했다. “백운의 마지막에 용소가 둘이 있는데 지살고지가 위에 있고 그 밑으로 십리 남짓한 곳에 천살고지가 있다. 주민들이 큰 가뭄이 들면 여기 와서 빌면 이에 응하도다”라고 기술하였다. 우리 광양에 이처럼 신비하고 의미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마음을 씻고 마음으로 백운산의 정기(精氣)를 받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지역의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것은 지역을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광양 백운산 의병부대 유적지 답사’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같은 강의실의 동료들과 격의 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2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의 참가자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 좋은 나들이였다.

광양 의병의 피 끓는 조국애의 숨결을 현장에서 느꼈고 지역의 숨겨놓은 비경을 직접 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좋았다. 이 프로그램이 널리 널리 홍보되기를 기원드린다. 필자는 이번 답사에 참여하면서 우리 지역 문화 지킴이의 한사람으로서 주어진 책무를 더욱 성실히 해 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것이 지역을 위한 가장 보람된 일이라는 확신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볼수록 매력적인 도시 광양(光陽)’을 새롭게 조명해서 오래오래 빛나게 하고 싶다.                           /전라남도문화관광해설사 나종년

<청사에 길이 빛날 광양의 의병장>

벼랑 끝에 배수진을 치고
나라의 치욕을 씻어 내고자
분연히 일어선 광양의 기상이여

부모 형제 이별하고
불효에 목메여도
나라 위한 일편단심

불굴의 신념으로
살 베이고 피 흘리며 
목숨 바쳐 싸웠노라

나라사랑 애국심에 경중이 있겠는가?
조국위한 충정심에 신분귀천 있을소냐

당숙과 조카의 피를 나눈 의리로
청사에 길이 빛날 
황순모 의병장! 황병학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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