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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계속 가보겠습니다”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10.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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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미국 국무성에서 외교관 채용시험이 있었다. 이미 필기 고사를 거쳤기에 합격자 후보는 추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종 구술시험의 경쟁도 치열했다. 박사학위 소지자, 대대로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백인 엘리트, 그리고 국제 외교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실무 경력을 쌓은 실력가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주리도 필기시험에 합격해서 구술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한국에서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그녀는 사실 지원자들 중 가장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었다.

우선 그녀는 동양인데다 아무런 경력도, 배경도, 박사 학위소자도 없었다. 구술시험 당일에 주리는 면접관 앞에 앉았다. “자료를 보니까 한국계 이민 2세던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이요. 만약 당신이 이번 시험에 합격한다면, 미국 정부의 외교관이 되는 것입니다.

외교 활동 중에 미국과 한국의 이익이 충돌하게 되는 상황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지요.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나라의 편에 서겠습니까?" 주리가 받은 질문은 대답하기가 이주 곤란한 질문이었지만 주리는 망설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한국과 미국,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요?” “저는 정의의 편에 설 뿐입니다." 주리가 시험에 합격한 것은 아마 이 한 마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리는 어떻게 해서 저렇게 잘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주리는 어린 시절부터 성서를 읽었는데, 성서 속에서 그의 마음에 각인된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평하고 의로운 것을 뜻하는 "정의"였다. '죽더라도 정의를 지킨다'는 것이 주리의 신앙이요, 삶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식이 독이 되기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지성까지 이르지 못하는 지식은 단순한 기능에 불과할 뿐이다. 지식인들 중에는 치부하기에 여념이 있거나 알량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스스로 권력의 마름이 되어 진실을 은폐, 굴절, 왜곡시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양심과 정의에 기반한 사회를 기리며 임은정 검사가 쓴 '계속 가보겠습니다'리는 책을 읽었다. 검사도 처벌받는다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 제 식구 감싸기 사건을 공론화한 책이다. 그녀는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끊임없이 검찰의 반성과 자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도 반성도 '셀프'로 하는 검찰 조직은 철옹성 같았다.

임은정 검사는 글을 쓸 때마다 부장검사실로, 차장검사실로 불려 다녔다. 심지어 정치에 뜻이 있어서 그런다는 얼토당토 않는 꼬리표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실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검찰 내에서 버틴 보람이 없지는 않았다. 법조문보다 정의와 도덕의 가치를 중시하는 임 검사처럼 검찰 내부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다른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2년 12월 북한에 동조한 혐의로 1961년 15년형을 선고받은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 재심 사건을 두고 위에서는 백지 구형을 명령했다. 검사에게 의견을 진술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에 앞선 3개월 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던 박형규 목사 과거사 재심사건 당시에는 무죄 구형 결재를 내주었던 터였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며 두 사건을 담당했던 임 검사는 잠자고 있던 검찰청법 제7조 2항 이의제기권을 깨웠다. 자연스럽게 임 검사의 이의제기권은 묵살 되었고 윤길중 전 간사 재심 사건은 검사 교체 순서를 밟는 듯했다. 그는 법정 내 공판검사 출입문을 잠갔다. 문 밖에는 쪽지 한 장을 붙였다. “징계 청원 글, 게시판에 올려 두었다. 나는 무죄 구형할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남녀의 성별이 아니라 불의를 불의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아닐까?

“잘못을 고백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겠지요. 제가 보고 격은 검찰을, 그 과정에서의 좌충우돌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좀 더 많은 사람과 지혜를 모아 함께 검찰을 바로 세우기를 소망합니다.(프롤로그17년), 우리 검찰과 검시들이 공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정직하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청렴하고 용기 있는 검사가 있기에 아직 대한민국이 망가지지 않고 굴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속지 말자. 법을 어긴 검사가 사법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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