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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하고 놀다강향림 /수필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09.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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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사를 연중 여섯 번 치른다. 추석과 설까지 일 년에 여덟 번 상을 차린다. 그때마다 정성을 다해 제사상을 준비했다. 시댁 어른들은 제기에 오른 음식을 보며 칭찬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명절 쇠러 서울에서 내려온 시댁어른들을 대접하러 나는 부른 배를 안고 새벽에 일어났다. 잠을 설친 탓인지 새벽에 눈 뜨기 힘들었다. 지금이면 임신 중이라 엄살 부리고 늦게 깬들 큰일도 아닌데 스물 몇 살의 나는 요령이 없었다. 그리고 내 불만은 쌓여갔다.

얼마 후 시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시댁작은집에서 가족들이 모일 때였다.
“앞으론 제사를 교회에서 추도식으로 하고 싶어요.” 
“이르다, 일러. 네가 50살이 되면 모를까.”
“빠르긴요. 어떤 방식으로든 제가 하는 거니까 추도식으로 하고 싶어요.”

작은어머니는 입가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부엌에서 둘이 나눈 이야기를 남편이 엿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운전하는 남편의 표정이 딱딱했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왜 분란을 일으켜?” 
“분란은 무슨! 시아버님도 생전에 반대하지 않으셨어.”
“그래도 저 어른들은 아직 아니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방식을 바꾸자는 건데 왜 안 돼?”

나는 크게 앓았다. 결혼하고 15년 되던 봄이었다. 넉 달이나 병원 생활을 했다. 그 뒤에도 변한 건 없었다. 나는 건강이 다 회복되지 않았다. 그 몸으로 추석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웠다. 동서에게 알아서 해 달라 부탁했다. 차례에 모인 사람들은 시댁작은어른들과 그 집 아들 며느리 그리고 동서네뿐이었다. 나는 추석을 보내고 작은어머니를 다시 만나 제사를 합하자고 제안했다. 작은어머니는 작은아버지 핑계를 대며 말끝을 흐렸다.
“요즘은 그렇게들 하던데요. 저도 아프고 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아프면 안 되지. TV에서 보니까 면역에 노니가 좋다던데.”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러갔다. 작은어머니는 딴전을 피웠다. 당신 딸이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이야기를 했다. 계속 듣던 나는 견디기가 버거웠다.
“작은아버지랑 얘기해보마. 너는 음식에다 진 빼더라. 좋긴 해.”
좋다고? 모호한 말, 뭔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나중에 전화가 왔다.
“내가 잘 말했는데, 작은아버지가 ‘NO’다.”

누군가의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던가. 그 후 제사가 되면 나는 재래시장을 돌아다녔다. 전 부쳐줄 곳과 생선을 찌고 굽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제사 음식 전부가 아닌 일부를 부탁하는 거라 쉽지 않았다. 전과 생선만 해결되면 제사상 차리기는 쉽다. 나는 주문한 전과 생선으로 제사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천명, 나는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가 이제 두 해 남았다. 더는 귀신이랑 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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