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기획보도
한국학호남진흥원 ‘호남학 콜로키움’, 순천·광양서 개최1일, 순천문화재단 ‘자유를 위한 투쟁 한말 호남 의병과 순천’
  • 김영신 기자
  • 승인 2022.09.06 20:14
  • 댓글 0

2일, 전남도립미술관, ‘광양의 항일 의병, 백운산 의병부대를 중심으로’

이은철 대표의 발표가 끝난 후 황순모 의병장의 손자 황부현 씨가 질의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천득염)이 지난 1일과 2일 순천과 광양에서 ‘2022 호남학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1일은 순천문화재단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 한말 호남의병과 순천’, 2일은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광양의 항일의병, 백운산 부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탐욕자와 국난의 시기에 외세로부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 호남지역의 의병활동을 주제로 강연과 토론을 진행했다.

▶‘자유를 위한 투쟁, 한말 호남의병과 순천’- 1909년 전국 의병의 60%가 호남의병

콜로키움 첫날인 1일,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은 ‘자유를 위한 투쟁. 한말 호남의병과 순천’을 주제로 한말 의병의 구분에서 한말 호남의병의 역사적 의의까지 ‘한말의병’의 A부터 Z까지를 꼼꼼히 정리한 40여페이지 분량의 강의 자료를 토대로 열띤 강의를 펼쳤다. 
한말의병은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해 전봉준이 일으킨 전기 을미의병(1895년), 1905년 일본이 포츠머스 강화조약에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 처단움직임과 함께 일어난 중기 을사의병(1905년),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한 박승환의 죽음을 계기로 분연히 일어난 후기 정미의병(1907년)으로 나뉜다.  
전라도 의병활동은 1908년 교전횟수 25%, 교전의병수 24.7%, 1909년 교전횟수47.3%, 교전의병수 60.1%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활동을 펼쳤다. 기삼연, 고광순, 김태연, 전해산, 안규홍, 심남일, 양진여, 황준성, 이석용, 문태서 등 의병장을 중심으로 1909년 전국의병의 60%가 호남의병으로 일제와 처절한 의병전쟁을 치르는 등 한말 의병활동 중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김세곤 원장은 “100명 미만의 小부대부터 1000명이 넘는 大부대가 활동하는 등 호남의병활동의 하이라이트는 정미호남의병이다”며 “한말 호남의병은 임진왜란 의병부터 이어온 호남인의 강인한 저항정신과 자주정신을 잘 보여주었다”며 한말 호남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일본군의 치밀한 추적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 조정의 외면과 비협조속에 재래식 무기를 들고 소수의 병력으로 맞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더 늦기 전에 임진왜란, 동학, 한말 항일의병투쟁, 광주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호남정신’을 정립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양의 항일 의병, 백운산 의병부대를 중심으로 - 이은철 마로희양 대표 발표자로 나서

이은철 대표, 황순모 의병은 의병장이었으며 이찬주 의병의 본적은 광양임을 밝혀
발표자의 발표내용보다 청중의 질문에 더 관심, 보다 깊이 있는 지역사 연구 아쉬워 

  
두번째 날인 2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콜로키움 행사는 관심 있는 시민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이은철 마로희양 대표가 발표자로 나섰다.
이은철 대표는 “대구가 고향이다. 언제 떠날까 생각하고 살다가 마흔이 되면서 부터는 마음을 바꾸고 지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함께하는 남도학에서 지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를 가르친 역사교사로서 ‘넓고 얕게’ 공부하는 사람이다. 오늘 강연이 눈높이에 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연 요청을 받고 한달여동안 광양의병에 대해 공부했다. 이해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다”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은철 대표는 광양의 한말 의병을 ‘백운산 의병부대’라 이름 붙이자며 황병학, 황순모, 김응백, 백낙구, 이찬주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이은철 대표는 이날 발표를 통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황순모 의병장이 광양 백운산을 무대로 70여명의 부하를 이끈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귀순 사망’이라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일본군에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밝혔다. 
황순모 의병장의 부하로 의병활동을 했던 이찬주 의병은 국가보훈처 공훈록에는 ‘본적 미상‘ 으로 기록돼있는데 이찬주 의병은 광양군 진하면 진목리 출신이라며 본적을 찾아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찬주 의병은 200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이은철 대표의 발표에 이어 진행된 청중 질의응답시간에는 눈에 띄는 질문자가 있었다.
황병학 의병장이 자신의 당숙이며 황순모 의병장이 할아버지라고 밝힌 황부현 씨는 “황순모 할아버지는 포수 200명을 규합해 학구의 황규순과 활동한 의병장이었다. 36세에 잡혀서 광양읍에서 총살당했다”며 “할아버지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도망을 갔거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들은 잘살고 있으나 우리는 가산도 몰수당하고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자료가 없고 기록도 없어서 증명할 길이 없다”며 “후손이 어엿이 살아있으니까 더 확인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발표자 이은철 대표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이은철 대표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기록에 의거해서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대답했다.
이성웅 전 광양시장은 “아직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한 많은 독립운동가가 30여 분이나 있다. 아마도 해방 이후에 건준, 여순사건, 6.25 등 연좌제에 묶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분들이 빠른 시일 내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연구가 인물중심에서 산업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일제에 의한 자원수탈규모는 52억원이었다“고 부연했다.
광양읍 김정태 씨도 “의병 활동을 인물중심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배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망덕포 전투의 경우 의병들이 첫 번째 공격 대상으로 망덕포를 선택한 이유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철 대표는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는 발언을 통해 광양의 역사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시립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은철 대표의 발표를 들은 한 참석자는 “나눠주는 발표 자료를 들여다보고 내심 실망했다. 넓고 얕게 연구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발표자의 발표내용보다 청중의 질의에 더 관심이 쏠렸다”며 “행사 말미에 시립박물관 건립 운운한 것은 좀 앞서가는 발언인 것 같다. 열정을 다해 광양의 지역사에 관심 갖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신선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