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옥 화가의 작가노트-10

‘식초는 소주 대병에 솔잎 꽂은 막걸리 식초를 넣어야 제맛인디...’전어회 무침의 마지막 마무리로 사과 식초를 치면서 그녀는 못내 아쉬워한다. 정열적인 여름의 열기가 청포도의 시큼한 알갱이들을 달콤함으로 채워 줄 때쯤 되면 그녀의 두 눈은 아득해지면서 마음은 망덕 포구에 먼저 가 있곤 한다.

성급하게 찾아 온 더위가 칠월 말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고향 친구와 통화하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전어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 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벌써 나왔다” 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몇 번이고 되물었지만 친구는 이미 전어회가 나왔다고 했다.

아니, 아직은 여름 더위가 가시지 않았는데, 벌써... 순간 내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은빛 떼를 이루며 힘차게 물길을 헤치고 망덕포구로 오고 있는 전어만큼
그녀의 맘도 다급해진다.

이젠 그녀는 여기 내륙에서도 전어가 올라와 있는지 횟집 수족관과 마트 생선코너를 빠뜨리지 않고 살펴보고 다닐 것이다. 물길을 찾아 헤매는 시추공들처럼. 그 사이 색색의 파스텔 같은 백일홍은 점점 그 빛이 바래 갈 것이고, 해바라기는 머리를 숙여 여름에 작별을 고하겠지.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코발트와 셀루리안 블루로 3일전에 채색한 유화 물감이 말랐는지 확인하고 바다색을 코발트터콰이즈와 호리즌블루에 가깝게 색을 바꾸어 준다.

먹는 것에 별 욕심이 없는 그녀가 전어철만 되면 밥맛을 잃고 힘들어 하니 한동안 이해가 안 되는 듯한 그녀의 남편도 할 수 없이 횟집과 마트는 물론, 집에서 가까운 소래 포구 등으로 전어회를 구하러 다닌 지가 여러 해 이어지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망덕 전어회보다 맛있지 않느냐’고 동의를 구하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광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공기가 없다는 말로) 이젠 실망시키지 않고 그렇다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도시에서 먹는 전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바다와 전어를 찾아 서해안의 포구들을 찾아다니다 당진 장고항의 수산물 시장에서 아직까지 사람 사는 시골 인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주말 극심한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로 인해 자주는 못 가지만 한 번씩 갈 때마다 허기진 맘을 채우고 온다.

이렇게 전어철마다 전어를 찾아 헤매고 광양과 망덕을 그리워 할 거였으면 처녀시절 순천 지하다방에서 선 본 키 크고 마른 K高 화학 선생이라는 남자를 따라 선암사로 갈 것을 하고 문득 생각할 때가 있다. 비록 남자의 고향이 농사짓는 시골이라 육신은 비록 고단했을 지라도 해마다 반복되는 여름 끝 무렵의 열병을 앓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순간, 며칠 전에 그렸던 백일홍 색감이 생각보다 탁해 보여 마르면 색의 혼합을 자제하고 밝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수채화처럼 여러 색의 유화 물감을 섞으면 색이 탁해져 고뇌에 빠졌었던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자제하려 애쓰고 있다.

그녀는 다시 고기잡이 나가셨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 남해 먼 바다까지 고기잡이를 다니시곤 했는데 어느해 폭풍에 돛단배가 난파되어 생사를 넘나드신 후로 바다에 나가지 않으셨다. 그녀는 바다와 전어라는 매개체에 얽매이고 있는 것이 단지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고향을 멀리 떠나 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DNA처럼 몸속에 내재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채 고향 바닷가를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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