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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끈강향림 수필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07.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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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를 물기가 흐르지 않게 이중으로 봉투에 넣어 엘리베이터를 탄다. 누구라도 만나지 않고 일 층까지 도착하기를 바란다. 밀폐된 공간이라 민폐가 될까 걱정이다. 내가 음식물 쓰레기가 된 기분이다.
분리수거장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연다. 역한 냄새가 올라와 코를 마비시킨다. 몇 초간 호흡을 참아본다. 쓰레기통 안 파리와 하루살이가 통 밖으로 날아간다. 안에 검은 봉지가 보인다. 거슬린다. 머리로는 그냥 지나치라 하지만 손은 이미 내가 버린 봉지를 이용해 검은 봉지를 집어 올린다. 음식물 쓰레기통 입구에 누군가 음식물 찌꺼기를 흘렸다. 그냥 뚜껑을 덮으려니 찝찝하다. 내 뒷사람과 마주쳤을 때 나를 흘린 자로 볼지도 모른다.
화단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씻는다. 손가락 사이 손톱 주변을 한 번 더 씻는데 수돗가 주변에 작은 비누가 눈에 띈다. 향긋한 냄새가 아닌 투박한 향기를 품은 빨랫비누다. 시멘트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대학생 때 본 드라마 한 장면이 생각난다. 만원 버스 안에 남녀가 있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여자의 머릿결 향에 남자가 향이 좋다며 무슨 샴푸를 쓰느냐 물었다. 여자가 ‘비누 써요.’ 하더니 뒤이어 자신 있게 ‘말표 빨랫비누’라 답했다. 그때 얼마나 웃었던지.
요즘은 세제나 비누 종류가 많아 집에서 보기 힘든 빨랫비누다. 시멘트 바닥에서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깨끗하다. 물기가 있는 손으로 몇 번 비벼 거품을 내니 코끝에 머물던 썩은 음식물 냄새가 사라진다. 하얀 거품이 손끝에 매달려 방울진다. 손바닥을 마주쳐본다. 거품이 올라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는 어릴 적 칫솔에 빨랫비누를 묻혀 왕 거품을 만들어내며 놀았다. 그 때문에 집 빨랫비누는 봉지를 뜯어내기 무섭게 홀쭉해졌다. 나의 빨랫비누에 대한 맹신은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은 후까지 여전했다. 세제들이 다양하지만 아이의 토사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건 빨랫비누가 으뜸이니깐.
그즈음 나는 애 옷가지들을 세탁기로 빨지 않았다. 빨랫비누로 손세탁한 뒤 비누 거품째로 찜통에 삶았다. 삶은 옷을 햇볕에 널어 말리면 어떤 섬유 유연제로 빤 것보다 비누 향이 깊었다. 속옷 겉옷 가리지 않고 삶아대다 아이 옷을 인형 옷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모든 옷을 삶아대는 나를 보고 언니는 너무 유난 떨면, 애가 면역력이 약화 된다며 겁을 주었다.
그런 빨랫비누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종일 제 몸을 부대끼며 음식물 쓰레기통 앞을 지키지 않는가. 빨랫비누가 발이 달려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도망을 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떤 인연으로 제 몸 다 닳기 전 투박한 향기로써 나를 이끌어 준 거다. 버려진 사물도 생각의 끈이 되다니. 음식물 쓰레기통 역한 냄새도 쓸모 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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