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수요명화산책
백은옥 화가의 작가노트-9그녀가 사막을 건너는 방법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07.19 17:46
  • 댓글 2

왜 사막이 떠올랐을까. 분명 도시의 아스팔트를 걸었는데 마치 사막을  걷다가 온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때 이르게 찾아 온 더위 때문이었을까? 

어슴푸레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집에 돌아 온 난 자문해 본다. 오전 10시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한 태양은  정오쯤엔 도시의 아스팔트에 강렬한 입맞춤으로 열기를 내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 정도 이동하고 나와서 정오의 태양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까뮈는 '이방인' 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총을 발사한 이유를 태양 때문이었다고 법정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이 작품에서 뜨거운 태양과  햇살은 중요한  매개체로 뫼르소에 영향을 끼친다. 책을 읽는 내내 뫼르소의 냉소적인 시선과 모습을 따라 가면서 그에게서 고독과 권태, 인간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닫힌 그 마음에 슬픔의 감정이 이입 되는 듯했다.  

공모전 준비로 시간이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그림 앞에 서 있게 하였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라는 부제로 20 여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다 그녀의 수필을 발견하고  오후의 도서관 창으로 들어 온 햇살을 등지고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간 기억이 떠올랐다.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을 그림에 다 투영시키면서 그녀만의 사막을 건너고 있는 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오아시스를 찾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 또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또한 오리엔트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 중개지로써 고대 화려했던 팔미라나 서역으로 떠나는 관문 같았던 둔황 정도의 오아시스는 아닐지언정  드디어 오아시스에  당도한 줄 착각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그건 신기루에 불과했다.

사막에선 지도를 버리고 나침반을 이용하는 이유는  사막의  지형이 모래 폭풍으로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엔 별을 지표로 삼고  사막을 건넜지만, 별의 소멸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나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엄습해 오면 말을 잃어버린다. 가슴 깊은 곳에  감추고 표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반대로 말을 하면서 슬픔을 풀어내는  친구의 얘기를 주로 듣는  난 그녀를 부러워한다. 어쭙잖게 지키고 싶은  존엄 때문인 걸까...

긴  통화 끝에 가슴에 통증이 지나간다. 캔버스  앞에 앉아 레몬 옐로우와 옐로우 딥 컬러로 바탕색을 깔고 여기다 옐로우 오커와 그린 골드로 해바라기  꽃잎을 그려 나가면서 뜨거운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서 있는 해바라기처럼 한발 한발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캔버스 앞에 앉은 난, 늦었지만 나를 위한 삶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래 폭풍은 간간히 불어 왔고 숨죽여 엎드려서 바람이 잠잠해 지기를 늘 기다려야 했고, 밤이 되면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했다.  때론 걸음이 너무 느린 거 같아 다급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시절처럼  발을 땅에서 떼지도 못하고 조급해 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다시 사막을 걸어 갈 것이다.

물의 요정이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모하여 한 자리에서 몇 날 며칠  바라보다가 해바라기가  되었다는 전설처럼 무의식중에도 언제나 나의 고개는 그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이면 아무리 바삐 지나가야 해도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 앞에 서 있곤 했다. 

언제까지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가? 나의 오아시스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님 사막에 나의 오아시스를 만들어가야 하는 걸까? 세상과 단절된 고비 사막에서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일구는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리쥐안  산문집 "아스라한 해바라기 밭"은 사막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 에서 신의 저주에 의해 산 밑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삶을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 시지프의 운명처럼 세상과 삶은 원래 부조리한 것임을 그걸 인정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자살이 아니라 그 삶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노란 해바라기 꽃잎을 표현할 때  오렌지 계열을 거의 쓰지 않았고, 해바라기 씨앗을 표현해야 할 땐 크게 심호흡을 하고 미리 생각해 둔 컬러로 과감하게 들어가야 한다. 작가들마다 이 부분을 진짜 다양한 기법과 색으로 나타내는데  이번 해바라기엔  울트란 말린 딥에 마젠타  계열로 어두운 보라색을 만들어 뜨거운 태양을 견뎌 내고 드디어 단단한 씨앗의  결실을  맺은 해바라기를 표현해 보았다. 발은 모래 속에 두고 두 눈은 꿈꾸며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이 사막도 끝이 나겠지. 이 끝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음을  믿으며, 나는 다시 물감을 섞는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cutewitch 2022-07-20 16:29:41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작가님도 사막에서 오아시를 찾았으면 좋겠지만,
    유일한 나와의 관계를 맺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오아시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삭제

    • candy 2022-07-20 09:40:39

      오아시스가 꼭 신기루만은 아닐꺼예요
      작가님의 오아시스를 꼭 찾기를 바랍니다   삭제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