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잘 튀긴 팝콘처럼 만개했던 모습이 아직 기억의 저편 너머 희미한 잔상으로 남아있건만, 오월도 어느덧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의  무상함에 흠칫 놀랄 뿐이다. 20대에는 젊음이 버겁고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거 같고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막연함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듯 했으며, 난 차라리 나이가 많아진 그래서 애매모호한 모든 번민으로부터 편안해진 나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요일들만 저만치 달아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괜스레 불안을 느낀다.  특히 5월은 그런 달이 아닐까 싶다,  5월의 달력에는 사나흘 사이로 '날'이 표기되어 있다.  가장 가까이 있기에 소중한 것을 자칫 간과할까봐 염려해서 정해둔 것이기에 챙기느라 버겁기도 할 것이지만, 나이가 드니 마음을 쓴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게 된다. 너무 편한 그래서 당연히 곁에 있을 거 같은 그 사람을 생각하고 챙기라고 정해둔 날,  선물의 크고 작음 보다 마음을 받는  것 같아 더 좋은 날들이 아닐까 싶다.

또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과  인연의 소중함을, 자유를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한 달이기도 하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명하는 건 대지의 생명이 있는 거의 모든 식물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5월이 지나가고 6월이 오기 시작하면 태양은 더 오래 대지위에 머무를 것이기에 태양을 견딜 수 있는 해바라기와 능소화, 배롱나무꽃 등이 피어난다. 
 

5월의 야생화는  무수히 많지만 참마리꽃,  토끼풀꽃,  쪽빛을 닮은 닭의장풀꽃은 내가 좋아하는 블루 컬러를 가지고 있다. 모를 심지 않은 논이나 논둑에 자운영 꽃은 아련함 속으로 빨려들 것처럼 유혹한다.
텃밭에 지난 가을에 남겨 두었던 대파꽃이  레몬 옐로우와 연한 그린색의 아주 작은 꽃들이 모여 둥글게 피어난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꽃에 마음이 가기 시작한 것은 나이 때문인지, 아님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한없이 겸손해진 것인지 자문해 본다.   
   

오월의 마무리는 물감으로도 표현해내기 힘든 여러 색의 장미꽃과 붉디붉은 덩쿨 장미가 울타리를 장식한다.   검붉은 장미 울타리  길을 걸을 땐 나이에 따라 상념이 다르게 다가온다. 한때의 기억으론 붉은 장미의 강렬함은 역설적이게도 찬란한 슬픔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어느 해 오월의 오후,  발끝만 보면서 터벅터벅 걷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만개한 장미꽃 울타리를 만난 난 어쩔 줄 몰라 하며 차라리 그 붉은 벨벳 커튼 속에  나를 가리고 울고 싶었다.    
 

장미의 강렬함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는 보라색 파스텔 톤의 등나무꽃을 빠뜨리고 싶진 않다. 5월의 그림으로  등나무꽃을 그리면서 잊고 있던 학교 교정의 등나무꽃과 함께 스무살 초반의 나를 소환하였다. 여러 번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려  애썼고 웃어본 적이 거의 없던 나.   
 

굵은 통나무의 그늘막 벤치를 겨우내 감고 있어 말라버린 줄 알았던 볼품없던 등나무가  오월의 어느날 환상적인 작은 연보라 궁전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기적도 5월에 이루어진다.  마치 “수고 했어. 괜찮아, 잠시라도 다 잊고 쉬었다가~”  속삭이는 듯 하다. 그곳 교정  등나무꽃 벤치에 마음  둘 곳 없던 스무살 갓 넘긴 겁 많던 나를 남겨 두었다. 
 

굿바이 오월,  부드럽게 부는 바람은 아카시아 향을 가져오고 밤 산책은 행복했으며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더욱 느낄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이젠 힘을 얻었으니 시련과 좌절이 와도  잘 이겨내는  열정적인 여름이기를 바래 본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