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진 하늘에 바지랑대를 비스듬히 세워놓았다. 그 한줄기에 기호들이 줄줄이 매달렸다. 하늘에서 땅이나 바다로 보내는 몸짓이다. 허공으로 끼우뚱 솟구친 기다란 가지를 곁가지들이 붙잡고 늘어진다. 허공에 뜬 연들인데 별처럼 빛을 쏜다. 누군가 연을 날린다.

단풍잎으로 엮었나, 꼬리가 바람 방향에 따라 한쪽으로 솟구쳐 날린다. 날벼락처럼 휘날린다. 연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가오리, 방패, 지네 발 들이다. 너른 바다로 나아간다. 거북선 연도 보인다. 신호연이란다.

거북선과 이순신은 동의어다. 장군도 전장에서 연을 활용했다. 임진왜란 때 해전에 나가면 아군 함정들끼리 연락을 취하기 어려웠다. 장군은 신호연을 날려 작전을 하달했다. 전함끼리 활용한 연들은 가지 수가 다양하다. 모두 용서 못할 적들을 처단하자는 기호들이다. 기지가 담긴 연이라 그런가, 크기도 늠름하고 오방색을 사용했다.

연에 담긴 색깔과 문양이 방향, 풍속, 장소 들을 담고 있다니 장군의 지혜에 숙연해진다. 단순한 연날리기가 아닌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호를 지닌 셈이다. 이순신 하면 거북선은 기억해도 신호연을 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거북선 연을 보니 둘 다 떠오른다.

신호연 중에는 방패연들이 많다. 방패연은 가로와 세로를 반으로 또 반으로 나누고 대각선으로 구분 짓는다. 위부터 차례대로 머릿살, 귀살, 장살, 허릿살 등으로 구분한다. 다양한 선과 색이 만나니 해학적이고 가살스럽다. 어릿광대 같다가도 모내기할 때 들러붙는 거머리 마냥 음흉스럽기까지 하다.

방패연 중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치마당가리’ 연이다. 덩그러니 놓인 검은머리 하나에 허리 살을 가로지르는 하단과 홍치마를 둘렀다. 신호 수단의 내용과는 별개로 강단진 여인네 모습이다. 직사각형 중앙에 뚫린 방구멍조차 자연스럽다. 눈, 귀 없고 입까지 방구멍에 가려 고난한 여인들의 그림자이다.

양성평등을 내세우는 요즘 생뚱맞은 소리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지나온 그녀들이 있기에 오늘날 평등과 불평등의 잣대를 재는 것이다. ‘치마당가리’ 연은 여인들의 빛을 별처럼 보여준다. 그 빛과 눈을 맞추다 보면 박수근 화가의 ‘소금장수’와 주인공 여인이 떠오른다. 수북한 소금을 쌓아두고 로댕이 조각한 ‘생각하는 사람’의 남자처럼 턱을 받치고 앉았다. 그 기품이 ‘치마당가리’ 연에 담겼다. 시공을 뛰어넘어 소통을 이룬다. 너와 나를 초월해 시선으로 교감한다.

연들이 떠도는 곳 아래는 관광지구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전국에서 내려온 버스킹 공연들로 거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특별행사로 일 년에 몇 번씩 불꽃을 쏘아 올려 밤하늘을 다채롭게 수놓는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려 하늘에 띄운 신호연 역사는 화려한 불꽃과 버스킹 소리에 잊혀 간다.

별빛도 묻힌다. 화려한 불꽃 향연이 끝나면 뿌연 미세먼지가 사위를 뒤덮는다. 별은 미세한 장막이 걷히길 기다린다. 밤하늘 지킴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찰나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고, 결국 사람들 곁에 머무는 건 별빛뿐이라 말한다.

관광지구 창공을 맴도는 저 연들을 누가 날리는가. 그들 중 한 사람, 옷 수선하는 아저씨도 연을 띄운단다. 낡은 옷가지들을 매만지는 손으로 한지에 연을 그리는 그의 모습이 겹쳐온다.

색색의 연 꼬리들이 자르고 버려진 옷감 자투리와 유사하다. 오가는 길목에서 무심코 바라본 연들은 나를 자극한다. 연들이 비상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는 용서하고 싶은 이의 이름을 연에 적어 띄운단다. 용서라니….옷 수선하는 아저씨는 용서하려 연을 날리고 장군은 적을 용서하지 않으려 연을 띄운다.

나는 용서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내 연은 어떤 신호를 담고 있을까.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들여다본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신호연이리라.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그 신호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연이 별처럼 빛을 발산한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