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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꽃잎이 이불이 되어광양시노인전문요양원 원장 이철재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1.11.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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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요양원 인근에 커다란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눈부시도록 화사하던 목련꽃이 어느 겨를 벚꽃에게 봄을 내어준 채 뚝뚝 사라져 버리더니 이제는 벚꽃이 꽃비가 되어 분분하게 휘날린다. 할머니는 봄의 꽃길을 따라 천국으로 가셨을까. 벚꽃이 오기 전 우리는 가슴 아프게도 할머니 한 분을 그 목련 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모셨다. 이승이 아쉬워 당신 영혼이 서성거렸을지도 모를 그곳에는, 할머니의 소천을 축복이라도 하듯 순백의 온새미로 목련 꽃잎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90세까지 사시다 간 김 할머니는, 젊은 날 함경도로 시집을 갔으나 결혼생활 채 몇 년도 안지나 남편이 6.25전쟁으로 전사하고 말았다. 그나마 딸 하나를 두었는데, 금세 데려올 마음으로 큰댁에다 맡겨두고 동생과 함께 월남하였지만 그것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 할머니는 그 죄의식으로 평생 혼자 살아오다가 요단강을 건너 먼 길을 떠나신 것이다.

생전 딸을 그리며 외롭게 살아오셨던 분이라 사후에라도 매일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요양원 인근의 목련 나무 밑에다 모시게 되었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할머니의 영은 우리 영혼과 마음속에서 날마다 살아계신다. 목련나무가 엄동설한의 나목이 되던, 숫눈처럼 꽃을 비우든, 무성한 이파리로 눈을 시리게 하던 김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하던 모습 그대로 나타나시며, 때로는 누군가의 안부 인사를 받거나 가까이 다가와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목련꽃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며, 이파리를 흔드는 바람소리에서 당신 목소리를 들으며, 나목에서 지난날 살아오셨던 당신의 삶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또한 우리 눈빛과 마주할 할머니라서 떠나보내는 슬픔을 조금은 희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살던 집 정원에 뼈를 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마당에다 가족의 묘(화장해서 묻겠지만)를 쓴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나라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자신이 머물던 요양원 근처에 수목장을 한 경우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할머니가 처음일지 모르겠다. 
우리 김 할머니는 경기도 평택에서 생활하다가 남동생을 따라 광양으로 오시게 되었다.

어르신은 기독교 신자로 말수가 적으셨고, 항상 교훈적인 말씀을 자주 해주셨지만 내내 걸음이 비틀거려 불안하였다. 수발자의 도움으로 배변이 가능하여 기저귀 착용을 몹시 싫어하였는데, 환청, 환시, 망상 증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김 할머니 주변에는 90세가 다 된 남동생 한 분만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두 명의 조카도 외국에서 살고 있어서 조문 올 사람이 없었으니 빈소도 차릴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운구할 인원조차도 없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다니셨던 교회 목사님이 연락되어 목사님의 집도를 발인 예배를 들일 수 있어서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

할머니의 운구에는 ‘특전동지회’의 도움을 받았다. 나 역시 회원으로 활동하는 특전동지회는, 특전사에서 복무한 동지들의 봉사단체이다. 한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마저 창공에서 망설임 없이 내던졌던 자랑스러운 용사들로 구성되어있다. 이제는 다들 민간인으로 돌아와 있지만 국가의 부름이 있다면 언제라도 군화 끈을 동여맬 준비를 하며 각자 삶의 현장에서 최선의 다해 살아가는 그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조국의 운명, 지역사회의 부름, 그늘지고 어두운 곳이라면 금방 달려가 함께한다.

김** 할머니가 떠나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도록 다들 바쁜 일정을 내려놓은 채 동행 해주어 고마울 뿐이었다. 휴일이었지만 직원도 모두 출근하여 함께하였으니 할머니는 마음 편히 떠나셨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마지막 정을 붙이며 기거 하였던 곳으로 들어오셨으니, 새 식구가 되어 다시 오신 듯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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