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이카로스의 무지개양관수 용강도서관 상주작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1.11.16 21:59
  • 댓글 0

거실벽에 걸어둔 존귀한 십자가를 우러러보았다. 내가 늘 하는 기도였다. 기원을 마친 뒤 집 안을 환기하려 창문을 열다가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였다. 기도와 무지개라니. 소망이 이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지개가 내 시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백운산 정상에 반대쪽은 검은 구름에 두 뿌리를 박았다. 무지개가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무지개에 혀끝을 대보았다. 군밤 내음이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그 향기를 끄나풀로 삼았다. 두 손으로 붙잡으며 무지개의 오른쪽 뿌리에 올라탔다. 철석같이 엉겨 붙으며 무지개를 타고 올랐다. 누에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무지개의 중심인 돔 끝을 향해 기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듯 무지개 방울을 마셨다. 물방울들은 무지개색이 아니었다. 투명하게 빛났다.

드디어 무지개 돔 정상에 다다랐다.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른쪽은 백운산 꼭대기 바윗돌이 보였다. 왼쪽은 검은 구름에 가려 밑이 안 보였다. 하늘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같았다. 고개를 숙이니 땅 위 집들이 보였다. 레고 조각을 잘 못 맞춰 실패한 놀이터와 비슷했다.

나는 무지개 한쪽 끝이 박힌 검은 구름으로 향했다. 내리막이라 미끄럼 타듯 재밌게 내려갔다.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투명한 빛을 발하는 무지개 물방울이 아니라 벽돌이었다. 아파트를 짓는 벽돌. 무지개의 한쪽은 투명한 빛을 발하는 물방울인데 백운산 정상 부근에 뿌리를 뒀고 한쪽은 물방울이 아닌 딱딱한 6각 벽돌이다. 그 뿌리에 다다르니 ‘여기는 25층 아파트 옥상인데 곧 50층짜리를 지어 백운산 정상과 높이를 맞춘 다리도 설치한다.’라는 대자보가 보였다.

내가 타고 건너온 무지개는 물방울과 햇살이 만나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이 하늘로 치솟아 엮어낸 물질적 가치였다. 그 대상은 아파트였다. 태양까지 치솟을 아파트였다. 새장 같은 집들, 개집 같은 집들, 똥싸고 오줌싼 게 빙글빙글 돌고 돌아 똥통 같은 집들이 오로라처럼 하늘을 뚫으려는 것이다. 나중엔 비 대신 똥물이 내리겠네. 나는 구름에 가린 태양을 비웃으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를 떠올렸다.

어디선가 군밤 내음이 진하게 났다. 나는 아파트 2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뻥튀기 차가 보였다. 뻥튀기 장수가 뻥튀기 기계에서 군밤을 꺼내는 중이었다. 그가 나에게 잘 구워진 군밤 서너 개를 집어 주었다. 맛있는 군밤이었다. 나는 금세 다 먹어버렸다. 그가 군밤이 잘 팔려서 25층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다고 했다. 더 벌어 50층 아파트 단지로 이사 갈 계획이란다. 그가 기원하는 아파트 단지 이름이 무지개였다. 무지개 아파트.

나는 무지개 속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한여름이었다. 깊은 산속 폭포에 다다랐을 때였다. 낭떠러지인데 물보라가 일어나는 곳에 무지개가 보였다. 협곡에 갇혀 낮게 뜬 무지개였다. 나는 정신없이 물에 뛰어든 뒤 무지개 속으로 들어갔다. 두 팔을 내밀어 무지개를 손아귀에 쥐었다. 투명한 빛으로 반짝이는 무지개 알갱이들이 손에 잡혔다. 내가 두 손을 하늘로 치켜세운 뒤 소원을 빌었다. 세 개나 빌었다. 신축 아파트, 고층 아파트, 수십억 아파트였다. 세 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지길 갈망했다.

나는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들었다. 500ml 플라스틱 통인데 투명했다. 속에 담긴 속세의 물을 다 비우고 거룩한 무지개로 들이밀어 잠자리채 휘두르듯 사방팔방으로 내저었다. 무지개가 물병에 가득 찼다. 나는 얼른 병뚜껑을 닫았다. 존귀한 사물이었다. 귀가해 십자가에 묶은 뒤 거실 벽 천장 바로 밑에 걸었다. 그 십자가는 늘 빛났다. 거룩한 존재였다.

그 뒤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다. 나머지 두 개도 성공해야 한다. 나는 뻥튀기 장수 옆에 앉았다. 뻥튀기 기계를 빼앗아 핸들을 붙잡았다. 나도 무지개 아파트로 갈 거야. 날마다 백운산 정상에서 노닐어야 해. 레고 조각에서 사는 것들을 비웃어야 해. 나는 태양을 향해 뻥튀기 기계를 겨냥했다. 이카로스를 추락시키다니. 태양을 향해 침을 뱉었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