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 먹힌 나뭇잎은 보면 가슴이 짠해진다. 그러나 벌레 먹힌 구멍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어떤 예술가도 벌레 흉내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늦가을이 되었는데도 벌레에 먹힌 흔적이 없는 매끈한 나뭇잎을 보면 눈길이 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차가지일 터, 상처 난 마음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거나 세상을 열심히 살았다는 자기 증명서이니까.

자연이나 사람이나 시간이 가면 어쩔 수 없이 時나브로 퇴색되면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요즘 노랗게 퇴색된 채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에서 바람이 빠져 나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여름 내내 푸른 잎맥을 자랑하던 나뭇잎도 가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낙화해야한다. 이게 자연의 이치다. 아니면 벌레에게 자신을 내어주든가. 

이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잠식시키는 블랙홀과 같다. 당신이 그처럼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지고 만다. 젊음도 성공도 명예도 물질도...시간은 한 순간에 의미 있는 것들을 먼지로 만들고 만다.

시간처럼 무자비한 것도 없을 것이다. 영어로 시간(time)이라는 뜻이  '자른다'는 의미를 가진 템노(temno)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아니 우리가 '날마다'라고 표현하는 말 역시 그와 맥이 닿아 있다. 24시간의 칼날이 날(刀)마다 우리 삶을 잘라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만이 우주와 인생의 진정한 지배자다. 그 시간이 크로노스(양적인 시간)가 됐건 카이로스(질적인 시간)가 됐건 상관하지 않는다. 神은 시간을 사용해 인간을 다스린다. 

대단히 미안한 소리지만 인간은 시간의 간식거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맹목적으로 질주해 오는 시간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 순간 의미를 창조하며 사는 것뿐이다. 살아가는 의미를 가질 때 우리는 시간의 한계와 무료함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올해도 70여일 정도 남았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벌레에게 먹힌 나뭇잎처럼 시간에 먹혀 소멸해 가는 것이다. 이 시간만이라도 알차게 보낸다면 그나마 한숨과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겠지 싶다. 11월에 들어서게 되면 낙엽이 지는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며 한숨도 두 배로 늘어나지 싶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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