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은 우리 인생을 닮았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데 막상 가보면 다시 길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가 길에서 시작됐다면 개인의 역사는 골목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산업문명의 발달은 빠르게 골목길을 지워 나갔다. 마치 그래야만 문명인이 되는 것처럼. 그와 더불어 사색과 낭만도 동시에 지워지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도 풀겸해서 얼마 전에 광양읍 개성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굳이 그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희미한 가로등과 길게 이어진 미로같은 골목길과 빨강 자전거와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들의 뒷모습이 나의 발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은 수도승처럼 고요했다. 하루 종일 무료하게 서 있던 가로등도 제 할 일을 찾았다는 듯 마실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들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니 골목길이 아이들을 키웠다고 해도 결코 허풍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비롯해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골목길에서 보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적막만 남은 고요한 저녁, 간혹 술에 취한 이웃집 아저씨가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를 불러 잠든 골목길을 깨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듯, 동네 개들이 일제히 화답을 하기도 했다. 

그랬다. 골목길은 늘 아쉽고 그리운 것들을 낳았다. 아마 첫사랑의 입술을 훔친 곳도 그녀의 손목을 잡은 곳도 “널 사랑해”라고 고백을 한곳도 대부분 골목길 언저리 어디였을 것이다. 아니 누구 할 것 없이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어렸을 적 추억을 상기하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호명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로 인해 마음이 답답하거나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때, 골목길을 걷다보면 ‘인생,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라는 위로를 받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골목은 생각보다 위로하는 힘이 세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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