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던 앙고라 메르켈 총리가 기민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넘기고 전에 살던 아파트로 돌아갔다는 짤막한 기사를 보았다. 이 보도를 보고 필자는 메르켈 총리와 독일 국민에 대한 친근감과 의무감에 이 글을 쓴다.

독일인들은 전 동독 출신의 화학물리학자인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메르켈이 동독인이 된 연유를 살펴본다. 1954년 베르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270만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한다. 수많은 인파가 물 밀듯 서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정반대인 동쪽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이 있으니, 서독 출신의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의 가족이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당시 그에게는 함부르크에서 낳은 겨우 6주가 된 딸이 있다. 이런 어린이를 데리고 머나먼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카스너 목사는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밀려오는 인파를 보면서 고민을 하던 중, 평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동독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공산 치하 동독으로 갔던 딸, 메르켈은 수학과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동독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하던 중,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환경부장관이 된다. 2005년 독일 총선에서 기독교사회민주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총리가 되었고, 2017년 4선에도 성공하여 ‘세계의 영웅’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셩이 된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독일에서 18년간을 통치하는 동안 메르켈은 한 번의 월권이나 비리가 없고, 한 사람의 친척도 공직자로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동산, 자동차를 사지 않았고, 별장, 수영장, 정원도 없다. 그녀는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도 두지 않고, 집에서 남편과 매일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다. 그녀는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면서 더 좋은 아파트로 옮기지 않았다.

기자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은 없는가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공무원입니다”  

1988년 9월 필자는 독일교회의 초청으로 세미나 참석과 홈스테이를 경험하는 호강을 누렸다. 백림에서는 동백림과 서백림으로 분단된 높은 장벽을 돌아보며 우리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겪는 고통을 이곳에서도 경험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요행히 동백림을 돌아보는 기회도 가졌는데, 이듬해 동,서독의 역사적인 통일이 이루어쪘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동백림을 돌아보았던 감회가 남달리 느껴졌다.

25일간의 독일 생활에서 필자를 가장 당황하게 한 건 철두철미하게 몸에 배어있는 그들의 검소한 생활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지도자들의 복장을 살펴보면 거의가 팔둑에 가죽으로 기운 것으로 20년 30년 입은 기성복들이었다. 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복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일인들 생활 문화는 합리적이고 검소하기에 실용적이고 편안하면 그만이란다. 그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도 족히 20년은 들었을 법한 해진 가죽 가방 등이 대부분이다. 어떤 물건이든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보니 독일 제품은 내구성과 실용성 위주로 만든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독일 제품을 튼튼하고 질 좋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세계인이 즐겨 입는 아디다스는 삼천 명의 주민이 사는 변두리 시골에서 생산하고 있다. 중앙집중, 도시화에 휩쓸리지 않고 지방 분권을 지켜가고 있다. 이들의 검소한 생활 문화는 어려서부터 몸애 밴 것으로 남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때는 큰마음으로 헌신하는 자세가 부럽다.

소박한 시골 교회에서 자란 소녀가 통일 독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 위기 극복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이끌어 온 것이다. 당대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시대를 역행했던 카스너 목사의 딸, 메르켈 총리가 130만 명이나 되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보듬어주는 인류애는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유행에 무조건 따르지 않는 나라 독일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안녕히 가세요, 앙고라 메르켈! 당신의 겸손과 순결한 영혼을 존경합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간절히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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